미국에서는 마스크도 안 쓰고 백신도 안 맞겠다고 뻗대는 사람들이 많고 프랑스에서는 의회가 다중이용시설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시민들의 거센 반발 속에 통과시켰다. 마주보기만 해도 옮는다는 고약한 염병이 피부색이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다르다고 사람을 가리지는 않을 텐데 서구 시민들의 몰지각한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공선 이전에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선천적 기질이 '난 소중하니까' 화장품 광고가 떠오르면서 그럴 수 있겠거니 싶다가도 맑은 샘에 떨어뜨린 한 방울 똥물의 가공할 파장에 무지할 만큼 잘난 나라에 사는 그들이 그리 아둔할까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염병하고 자빠진 현실에서 불가해한 행태를 보이는 그들의 머릿속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총 균 쇠」 저자로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국내 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를 읽고 무릎을 탁! 쳤다. 문화인류학자다운 탁견이었다. 나를 충분히 설득시켰다.
인터뷰어: 작년에 서구 언론들은 동아시아인들이 방역에 성공한 이유를 독재를 경험한 나라들이 많아서라고 보도했는데요. 동아시아인들이 국가주의에 익숙하기 때문에 정부 방침을 잘 따른다는 말을 지금까지도 합니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행동하는(community-oriented)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라고 하니 반갑습니다.
다이아몬드: 그들의 해석은 틀렸어요. 동아시아와 유럽과 미국이 다른 점은 독재 여부가 아닙니다. 왜 한국과 일본은 공동체 중심적이고 유럽과 미국은 아닐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농업의 역사와 관련합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주로 벼농사를 해왔어요. 유럽과 미국은 대부분 밀농사를 짓고 보리를 길러왔고 지금은 옥수수에 치중하죠. 밀농사는 개인주의적이에요. 밀을 재배하는 농부는 다른 농부와 함께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가서 밀씨를 뿌리면 됩니다. 밀이 다 자라면 또 자기가 거두는 거죠. 쌀을 재배한다는 것은 공동체 농사를 하는 겁니다. 알곡이 많이 맺히고 여물게 하려면 논에 물을 끌어들이는 관개 작업을 해야 해요. 농부 한 명이 들에 나가 씨 뿌리고 돌보는 수준의 농사가 아니죠. 게다가 벼를 추수하는 작업도 공동체 활동이고요. 1만 년 동안 동아시아 사람들은 벼농사 때문에 공동체 중심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겁니다. 반면에 유럽인들은 9천 년 동안 이어온 밀농사 영향으로 개인 중심의 문화를 이루게 됐습니다. 이것이 제가 주요 원인으로 꼽은 이유입니다. '왜 미국인은 정부에서 조심하자 하면 많은 이들이 따르지 않을까?' 미국인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나는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나의 자존감을 지키겠다'고요.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세계 지성에게 10년 생존 전략을 묻다> 1. 재러드 다이아몬드, 한겨레, 2021.07.22.)
유전적 기질이 바뀔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 방면에 완전 문외한인 내가 씹어제낄 주제가 아니니 패스. 개인의 자유만을 갈구하다 그 개인을 보듬은 공동체의 파멸을 부르는 역설을 목도하는 게 지구촌 식구 입장에서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밀이 서구에 끼친 영향이 실로 엄청나다는 걸 다이아몬드 교수 인터뷰를 통해 절감했다. 흥미롭게 뒤져볼 주제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귀중한 지적 흥분을 제공한 다이아몬드 교수가 고맙다. 근래 보기 드물게 이름값 제대로 하는 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