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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12. 2024

완충 시간

   까탈스러운 부친 밑에서 10년째 일을 보는 김군은 부친이 현장에서 손을 떼더라도 깎새가 거두어 동고동락해야 할 식구나 다름없다. 기민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편인 김군은 혼자서도 제 몫을 충분히 해내지만 기술자 소리 듣기에는 아직 멀었다면서 굳이 부친 밑에서 곁꾼을 자처한다. 그런 김군이 고마우면서도 부친 은퇴 이후 그를 어떤 식으로 대우해줘야 할지 적잖이 고민스럽다. 부친 은퇴 시계가 점차 빨라지면서 생각만 많아진다.

   기민하지 않은 김군한테 좀 별난 구석이 있다. 볼일이 생겨 김군이 모는 차를 얻어 타면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을 칼같이 못 박는다. 이를테면 아무개병원은 9시 17분에 도착하고 다음 행선지는 11시 59분에 닿는다는 식으로 여지란 게 없다. 그렇게 분명히 하고 정확하게 도착할 때가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연착하기 일쑤다. 희한한 사실은 일찍 도착한 적은 또 없다. 도로 사정을 감안해 넉넉하게 시간을 잡는 융통성을 발휘한다고 타박할 사람 아무도 없는데도 그는 네비게이션 화면에 뜬 예상 도착시간을 유독 맹신한다. 

   배수진처럼 데드라인을 정한 뒤 심혈을 기울여 매진하는 모습은 제 성실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강박을 촉발시켜 그 강박을 극복하려는 도전과 응전으로 보여 가상하다. 정해 놓은 시한에 임무를 완수하면 성취했다는 뿌듯함으로 한껏 고양될 테지만 지체되었을 때 지불해야 할 면구스러움이 후폭풍으로 만만찮을 게 뻔한 양날의 칼이긴 하다만 말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만 모든 걸 '제때에 알맞게' 또는 '바로 때 맞춰' 해치우겠다는 발상은 버거울 수 있느니 유의해야 한다. 괜히 실없는 사람으로 빈축을 살지 모른다. 하여 기약을 정하더라도 혹시 모를 만일을 감안해 완충 시간을 덧대기로 한다. '정확'처럼 어려우면서 비정한 것도 없으니 다음주 김군 차로 모친과 병원 들를 때는 진료시간에 맞춰 당도하면 되니 도착시간에 구애받지 말라고 당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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