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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19. 2024

호의

   이물감 때문에 가위를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못하자 이발의자에 앉은 손님이 그런 깎새가 꾸물거리는 줄 알고 비아냥거렸다.

   "관절염인가? 오늘 중으로 머리 깎을 수는 있으까나?"

   마음같아서는 뒤통수를 한 대 날리고 싶지만,

   "머리카락이 박혀 따끔거리네요.'

   대꾸했더니,

   "뭔 대수라고."

   하찮게 여겨서,

   "직업병은 누구나 다 있는 법입니다. 온종일 머리카락에 파묻혀 살다 보니 그 머리카락이 손이며 발이며 안 박히는 데가 없어요. 손톱 밑에 머리카락 박혀 본 적 있습니까? 죽습니다!"

   손님 말본새가 이 앓는 놈 뺨 치는 놀부 심보나 다름없어 퉁바리를 날렸다.

   머리카락이 박히면 무지하게 아리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고통. 눈에 보일락 말락 하는 머리카락이 손톱 밑에 박힌 깎새 신세가 목구멍에 뼈다구 걸린 호랑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남들은 평생에 한두 번 겨우 겪을까 말까 하는 희귀한 고통이 심심찮은 건 깎새가 깎새라서 생기는 업보라 누굴 탓하랴. 다만 머리 깎다 말고 느닷없이 응급약 담긴 통을 급하게 뒤적거리거들랑 '저 깎새 머리카락이 박힌 게로군' 이해해 주시길. 더불어 '손톱 밑에 박히면 죽을 맛일 텐데' 같이 아파해주는 척이라도 하면 당신은 분명히 천국 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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