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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22. 2024

문디 콧구녁에서 마늘씨를 빼먹지

   덥수룩하게 머리를 길러와서는 늙은것이 머리털만 수북해서 영 성가시다는 둥 점방 바로 맞은편이 자기 집이라 자주 깎으러 온다는 둥 말끝에다 한숨을 꼭 동행시켜 쉬지 않고 궁시렁거리는 영감이었다. 분기에 한 번 깎새 점방으로 걸음하는 걸 자주 들르는 거라면 그렇다고 치자. 허나 깎새는 영 탐탁지가 않다. 이 영감 겉으로는 불쌍하고 애처로운 척 제 잇속 챙기려는 수작에 능한 한마디로 의뭉스럽기 짝이 없어서다. 이를테면,

   - 머리털 많은 것도 귀찮은데 허옇게 새기까지 해서 영 못 봐줘. 사장, 커트에 염색까지 얼만교?

   - 만이천 원이오.

   - 집이 여기서 가차워요. 도로 건너면 바로야. 오늘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온 김에 염색까지 해 주소.

   - 어르신, 저번에도 그러셔서 안 된다고 했더니 그때는 집에서 이천 원 더 들고 오셨잖아요.

   -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게 언제 적인지 모르요. 만 원에 해 주소.

   - 어르신, 문디 콧구녁에서 마늘씨를 빼먹지 다른 데보다 요금이 훨씬 싼데 거기서 더 깎아 달라면 저는 뭐 먹고 삽니까!

   결국 만 원받고 커트에 염색까지 해 주고 염색한 머리 샴푸만 영감이 집으로 돌아가 직접 하는 걸로 낙착을 봤다.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거기서 거기이긴 하지만 점방이 있는 그 동네에 염증이 나곤 하는 깎새다. 타인의 선심을 노려 도움을 기대려는 거지 근성, 돈도 없고 가오까지 내던져 버린 만무방 출현이 아주 드물고 우연한 소동이 아니라 동네가 자리잡았을 때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오랜 폐습이 주민들 심리에 잠재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면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말쑥한 정장 차림 중년남이 덥수룩한 머리를 들이밀고는 요금 낼 돈이 없지만 당장 다음날 면접을 봐야 해 머리는 꼭 깎아야겠다면서 무임 커트를 애원하질 않나, 요금 치르겠다고 주머니 속 동전까지 탈탈 털어 내보이면서 "백 원이 모자라요" 천연덕스럽게 뻗대는 치가 있질 않나,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커트와 염색을 퉁치려는 영감까지. 

   '나'라는 사람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 자존심을 돈으로 메길 수는 없다. 하지만 몇 푼 안 되는 요금 가지고도 비루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전락시키는 이들은 푼돈보다 못한 구차한 자존심의 소유자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서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라며 주민 행세를 하는 동네라면 억만금을 줘도 살고 싶지 않다. 장사치로 이문 올릴 일에만 치중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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