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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23. 2024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에서 중3짜리 남학생 9명 대부대를 이끌고 부산을 찾은 박가를 지난 주 금요일 해운대시장 한 횟집에서 만나 진하게 회포 풀었다. 덕분에 반취반성인 채로 토요일 몰려드는 손님을 치뤄 내느라 생고생했지만. 사람은 직접 얼굴을 맞대야 흉중에 있는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법. 소주잔 기울이면서 수다히 재잘댔더니 10여 년 격절이 순식간에 해소가 되고도 남음이라.

   여의도 증권맨으로 롱런하는 비결은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일 게다. 조직 안에서 제 자리에 맞게 처신하려는 노력은 부단해서인지 상하 따지지 않고 평판도 좋은가 보더라. 임원도 정직원이라는 그 회사 특성 상 정년까지 너끈히 왕성하리라는 자신감은 보기 좋았다. 다만 원하는 걸 얻을수록 새로운 걸 갈망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모든 걸 다 채울 수 없다는 좌절이 절망으로 엄습하다간 자칫 치명적일까 봐 박가를 만나기 전 선물로 준비한 건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김영민, 사회평론아카데미, 2022)였다. 서로 허무해지지 말자는 속내를 책갈피에다 담아서 말이다.  


​   인생의 허무를 느낄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은 그 허무가 어럽사리 부지하고 있는 원기마저 빨아먹고 있는 바람에 우리는 갈수록 메말라져 간다. 

   떨쳐내지 못하는 그 허무 때문에, 아니 허무는 허무대로 놀게 냅두고 딴 생각으로 허무를 잊어버리려고 우리는 부단히, 히스테리컬하게 집착한다. 이를테면 돈, 명예, 디지털 세계, 멍청한 인간 중에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마약 따위로. 

   이 꼬락서니에 돈이니 명예를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고 중독은 적성에 안 맞아서 나름대로 허무를 왕따시키는 방법으로 택한 집착이 글짓기다. 그리고 글을 짓는 데 필요한 핵심요소는 사람이며 사람 중에서도 친구임을 밝힌다.

   친구여, 각자 사무치는 허무를 친구랍시고 덜어줄 순 없으나 같이 허무를 즐겨줄 순 있다. 마치 비 오는 날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듯 말이다.

   그렇게 건강하고 가급적 행복하게 이 세계에서 오래오래 살아 남자.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이것뿐이다.


​   월요일인 어제 서울로 올라갔을 텐데 여독이나 풀고 출근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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