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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24. 2024

권력이 벗겨지기 직전인 벌레

   2016년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에 출석한 김기춘, 우병우를 곤충에 빗대 철학자인 고故 김진영은 권력욕을 고찰했다. 미물이라는 하찮음이 권력이라는 가면을 뒤집어 써 호가호위하다 그 권력이 떠났을 때 여지없이 드러난 미물성은 잡은 것 같은데 잡힌 게 없는 권력의 무상함이라고 간파한 것이다. 가히 철인哲人답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이 시끄럽다. 권력에 취해 발광하던 자들끼리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꼴이 뒤집어 쓴 그 권력이라는 껍질이 벗겨지려는 암시인 성싶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은 필연이다.  


​   작은 갑충 한 마리가 방바닥을 빠르게 기어간다. 슬쩍 건드리니까 돌연 딱딱하게 몸을 움츠리고 정지해서 꼼짝도 않는다. 갑충은 지금 절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자기는 죽었다는 것, 더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러니 그냥 놔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몸짓 신호는 거짓말이다. 갑충은 정말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짐짓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다. 자연조건 속에서 힘없는 것들은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서 삶과는 전혀 반대의 것, 즉 죽음 속으로 도피한다. 이것이 헐벗은 미물들의 육체가 알고 있는 가엾은 생존 전략이다.

   그런데 이 미물들의 육체가 갑자기 강자의 육체를 흉내 내는 경우가 있다. 그건 그 미물들이 권력을 얻었을 때이다. 미물들의 권력은 자기의 권력이 무엇을 위해서 쓰여야 하는지를 모르면 안에 쌓여 있는 원한 때문에 폭력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그 전형적인 모습이 강자 논리만을 배워서 알고 있는 파시스트와 전체주의자들이 보여주는 권력의 양상들이다. 미물들에 지나지 않는 그들은 모처럼 얻은 권력에 의존해서 자신의 사이비 강함을 드러내고 확인하고자 한다. 그래서 약자들에게 동질적 연대감을 느끼는 대신 권력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면서 그 약자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본성은 여전히 미물성이다. 그 미물성의 정체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건 권력이 그들을 떠났을 때이다. (<김진영, 낯선 기억들-미물들의 권력>, 한겨레신문, 2016.12.29.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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