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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07. 2024

청년의 포부

   키가 훤칠하고 인물까지 잘난 청년이 스포츠형으로 확 밀어 달랬다. 쓰잘데기없는 오지랖이 또 발동해서 "실연당했어요?" 물었더니 마음 다잡고 재수할 작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숙해 뵈는 외모와는 달리 이제 갓 스물이랬다. 도대체 어디를 가고 싶길래 고난의 길을 마다않나 궁금증이 도져 또 물었더니 대뜸 "한양대학교요" 부르짖는 게 아닌가. 그 학교 가서 뭘 하고 싶냐며 말꼬리를 놓지 않으니 "증권사 입사하려구요"해서 증권맨이 되면 뭐가 좋냐고 따지듯 물었더니 "부자되려구요" 아퀴를 지어 버리니 더이상 이어갈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자가 되자면 증권사를 들어가야 하고 한양대 입학이 곧 증권맨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논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게 분명한데도 달리 반박할 수 없었던 까닭은 젊은 청년의 이상을 "나 때는 말야"라는 '라떼 화법'으로 뭉개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을 뿐더러 야심찬 목표에는 기실 자기만의 숭고하면서도 치밀한 속셈이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하며 무엇보다 청년의 야무진 태세에 충분히 설득당하고 남음이어서다. 

   다만 나이 스물에 가장 가치있는 인생 목표를 '부자'로 상정한 점은 왠지 씁쓸했다. 윤택한 인생으로 가는 길은 살다 보면 부자가 아니라도 여러 갈래일 텐데 청춘의 날개를 펼칠 즈음부터 이미 배금주의의 노예를 자청하는 건 깎새의 소싯적을 겹쳐 보건대 대단히 퇴행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답잖은 과거지사를 들먹이면서 청년을 흔들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여의도 한 투신사에서 본부장 노릇하는 박가를 떠올려 그 청년도 박가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다고 응원해줬다. 

   "원하는 대학 들어가면 아저씨한테 말해요. 아저씨 친구 소개시켜 줄 테니. 같은 길 먼저 걸어가는 선배한테 조언 들어 나쁠 거 없잖아요."

   돈 많이 버는 방법보다 재밌게 일하는 방법부터 가르쳐 주는 박가이리라 믿으면서 설레발 좀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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