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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08. 2024

구간단속 단상

   대목이랍시고 유난을 떨었는지 아침저녁으로 힘이 부쳐 명절 전까지는 차를 몰고 출퇴근할 예정이다. 아침엔 삭신이 쑤셔 일어나기가 고되고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천근만근이 되는 몸뚱아리로도 어떡하든지 무사히 대목은 치뤄야겠기에 기름값, 주차비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그렇게 차를 몰고 다니다 보니 최소한 출퇴근 도로 사정만큼은 훤해졌다. 어느 구간이 병목이 심하고 대기 시간이 유난히 긴 신호등이 어디쯤에 있는지 따위. 특히 특정한 도로 구간 시작과 끝 지점에서 차량 통과시각 및 이동거리를 측정해 속도 위반 여부를 판정하는 과속 단속 방법인 '구간단속'은 생소해서 적응하기 어려웠다가 요즘은 제법 노련하게 대처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유독 황령산을 관통하는 황령터널에 진입할라 치면 뒷차가 신경 쓰여 액셀 밟는 오른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곤 해 곤혹스럽다. 구간 시작지점 속도를 한껏 죽이면 제한속도 시속 50킬로를 살짝살짝 상회하더라도 느긋하게 터널을 빠져 나올 여유가 생기지만 가속을 재촉하듯 차 꽁무니를 물고 바투 달라붙는 뒷차가 나타나면 차간거리를 확보하려는 급한 마음에 그만 속도를 내어 버린다. 그러면 평균속도를 제한속도 아래로 떨구려고 구간 끝지점에 가서는 으레 급브레이크를 밟곤 한다. 안 해도 될 짓을 저지르고 마는 속상함으로 출퇴근 기분이 잡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가뜩이나 전광석화같은 세상 만사, 이런 속도감으로 인생을 축내고 싶진 않은데 말이다.    

   이문구 단편소설 중에 나오는 한 대목이 생각난다.


​   이보슈. 인간의 평균 수명이 얼마요. 한 칠십 정도가 아니우. 그러면 평균 칠십 년 잡구, 인간이 그 칠십 년을 향해서 가는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우? 나도 얼마 전에야 우연히 어떤 책에서 보구 깜짝 놀랬시다마는, 무슨 얘기냐 허면, 인간은 앉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두 그 칠십 년을 채우기 위해서, 즉 죽음을 향해서 시속 사십 킬로루 달리구 있다 이거요. 자 그러니 가다가 안 서게 됐수? 그것도 차루다가 달리는데 가다가 더러 안 설 수가 있겄느냐 이거요. 그러찮수? 어떠슈, 들어보니 무거워요?(「장천리 소태나무」,『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문학동네, 2000, 81쪽) 


​   충청도 한적한 시골에 언제부턴가 '산길 들길 논길 밭길 개릴 것 없이, 신작로구 흔작로구 닥치는 대루 차가 들어가는 길이면 들어가서, 낮이구 밤이구 차만 서 있다 허면 꼭 그 지랄덜'이라 소설 속 주인공인 이송학 씨는 가다가 말구 길에서 거시기해쌓는 차를 말리는 단속반장으로 계도를 하던 차에 한 중다리 차주가 적반하장 격으로 변명을 늘어놓는 대목이다. 

   그 '어떤 책'이 어떤 책인지 출처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 무슨 근거로 시속 사십 킬로를 단정했는지 도통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어떤 고담준론보다 마음에 착 감기는 까닭은 직관적이어서가 아닐까. 시속 이백삼십오 킬로로 날아가는 양궁 화살을 떠올리며 화살같은 세월이라고 빗대곤 하지만 숱한 사연으로 점철된 우리네 인생을 퉁치기에는 너무 순식간이다. 걷는 것보다는 빠르고 시내 제한속도인 시속 오십 킬로보다는 느려도 눈앞에 지나가는 풍경이 세밀화보다는 추상화에 가깝게 보이는 '죽음을 향해 달리는' 속도로 시속 사십 킬로야말로 딱이다. 하여 소설가가 짐짓 꾸며낸 이야기일지언정 설득력은 가히 가공可恐하다.

   시속 사십 킬로가 속도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고?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시속 사십 킬로가 전혀 심상하지 않은 속도란 걸 안다. 하물며 오십 킬로는 두말하면 잔소리지. 그러니까 소설 속 인물이 말한 바는 대단히 섬뜩하다. 인생이 소멸하는 속도가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이다. 설령 카섹스를 즐기려는 따위 응큼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세울 수 있을 때 잠시 인생이라는 차를 정차하고 즐겨야 한다. 그게 인생을 유익하게 영위하는 방법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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