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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12. 2024

외도

   "당신한테 이쁘게 보이려고 이발하고 염색하니까 3시 전에는 통화를 못 하니 3시 30분에 연락할게요."

   스마트폰에다 대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오그라드는 애정 공세를 서슴지 않던 중늙은이가 겸연쩍었는지 통화가 끝나자 묻지도 않았는데 실토를 했다.

   "여자친구가 기다리는 걸 싫어해서리."

   배우자와 사별한 뒤 적적한 심사를 달래는 데는 친구, 특히 여자친구만 한 존재가 없다고 꼴답잖게 오지랖을 떨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 맞는다. 어디서고 본 적 없는 응큼한 눈빛으로 깎새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마누라는 집에 있지. 어느 미친 놈이 마누라하고 그렇게 통화한답디까? (새끼손가락을 들어 까딱거리더니)여자친구면 몰라도."

   마누라 있는 유부남인 줄 여자친구는 잘 알고 있댔다. 숨길 것 없이 다 아는 사이가 되니 더 대담해졌다. 보통은 문자로 접선일을 정하지만 어떨 땐 마누라가 버젓이 옆에 있는데도 통화가 자연스럽다. 그렇게 만나 가끔 몸도 푼다나. 마누라나 중늙은이나 한집에 같이 살아도 서로를 유령인 양 있는 듯 없는 듯 대하니 걸리적거릴 게 없다나.  

   부부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이룬 지 오래라지만 이런 식으로 외도를 자랑삼아 떠벌리는 건, 중늙은이가 어디 사는 누구인지 전혀 알 길 없는 깎새를 아무리 방외인이라 여긴다 해도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불현듯 궁금해서 물었다.

   "혹시 선생님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사모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현장에서 들킨 도둑놈 얼굴인 양 아연실색하더니,

   "미쳤어요 발각되게!"

   당찮은 짓인 줄 알면 안 해야 마땅하다. 옛사람 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 남자는 어리나 늙으나 밝히기는 매한가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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