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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13. 2024

소년성

   <김창옥 쇼>라는 TV 프로를 우연히 봤다. 방청객 사연 중에는 명절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부루마블 게임을 즐기느라 외박을 서슴지 않는 남편을 성토하는 아내의 하소연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창옥은 "나이가 들수록 이름 옆에 뭐가 붙는다. 과장님, 부장님, 교수님, 사장님 따위. 역할도 붙으면서 상처도 붙는다. 사기를 당했다, 실연을 당했다 따위. 어릴 적 친구들은 그냥 이름 그대로 불러주는 존재다. 남자들의 소년성은 지켜져야 된다. 사회적 옷을 벗고 앞에 서도 부끄럽지 않은 내 친구들이다. 어떤 잘난 척도 할 필요 없는 상태, 그게 바로 부루마블이다"라고 말해 폭소를 유발했다.

   숱한 사연과 곡절로 점철된 내밀한 인생에 딱 들어맞는 정답이 있을 리 만무해서 대중들에게 열광적 지지를 받는 이른바 스타강사란 작자들이 쇼라는 형식을 빌어 주워섬기는 요행수같은 조언은 무턱대고 백안시했던 게 사실이지만 '소년성'만큼은 심중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오래도록 곱씹었다. 명절마다 모여 부루마블은 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만나 술자리를 가지려 했던 집요함은  그 '소년성'에서 기인한 바 컸다. 김창옥 말마따나 '어릴 적 이름 그대로 불러주는', '사회적 옷을 벗고 앞에 서도 부끄럽지 않을' 친구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낙이야말로 명절이 건네는 행복이었으니. 

   세월이 흐를수록 살아가는 형세가 달라지고 벌어지니 격조해지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그 흔한 '깨똑'소리 하나 안 울리는 명절 연휴는 참 처량하다. 더 두려운 건 '내 코가 석 자'인 사정에 쫓겨 아전인수격 외로 틀기를 일삼더니 어렵사리 지탱해 오던 관계마저 원심력이 작용하듯 그 궤도를 이탈해 멀리로만 겉돌다 유야무야되는 그 어정쩡한 종언이 곧 닥칠 미래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면 어떨까. 데면데면하게 변한 관계망이 예측불허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의 솔직한 단면이라 여기고 마음을 아예 탁 내려 놓는다면? 하여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현실에 맞게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되레 마음이 편해질는지. 여전히 구심력으로 똘똘 뭉치건 세월의 원심력에 못 이겨 튀어 나가건 우정의 고갱이만이라도 잔존해 있음을 감사하고 살면 어떨지. 상대를 지금보다 훨씬 느긋하게 바라보는 마음의 여백, 그 털털함이 위태로운 '소년성'을 그나마 존속시키는 유일책은 혹시 아닐는지. 웃음과 환호로 왁자지껄한 쇼를 보는 내내 들던 잡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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