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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16. 2024

라떼파파의 변신

   개업 때부터 주욱 단골인 젊은 아빠와 아들이 있다. 그 아빠를 깎새는 라떼파파라고 부른다. 아이엄마는 치과 기공사로 일하다 출산 이후 자기 커리어 단절에 절망했다. 산후 우울증 기미까지 보이다 보니 그 밑에서 아이답지 않게 크는 아들이 염려된 나머지 아이엄마를 일하러 내보내고 대신 자기가 양육에 전념하겠다고 아예 집에 눌러앉은 아빠였다. 가세가 쪼그라들 게 뻔하다고 주변에서 염려했지만 가족이 먼저라는 신념이 더 컸다. 다행히 아빠가 양육을 전담한 뒤로 아이는 몰라보게 밝아졌고 아이엄마도 처녀 적 활력을 되찾아가는 중이랬다. 

   깎새가 라떼파파한테 주목한 건 너누룩함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배수진을 친 병사인 양 이것 아니면 곧 죽어도 안 된다는 식으로 처세하려는 강박에 코웃음치는 유연하고 느긋한 태도는 반할 만했다. 당시 여섯 살짜리 아이 유치원 등·하원을 도와주고 식사를 챙겨주며 한 달에 한 번씩 꼭 이발하러 단골 커트점을 찾는 일상이 무미건조할지언정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인생이고픈 우직함까지 엿보여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런 라떼파파가 변했다. 아이를 양육하는 틈틈이 공인중개사를 준비한다는 귀띔이 있었지만 쉽게 한번에 합격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합격하자마자 성업 중인 지인 밑으로 들어가 상가만 전문적으로 흥정을 붙이는 거간꾼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래서 딴사람인 줄 알았다. 물론 아이를 중심에 놓고 일과를 짜맞추는 일상은 여전해 유치원 하원 전 몇 시간 파트타이머로 일할 뿐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바닥이 안 보이는 불경기임에도 실적이 곧잘 올라온다면서 수줍게 웃어보여 깎새가 더 안심했다. 

   문득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오래전 라떼파파 의중이 퍼뜩 떠올랐다. 엄마 우울증 영향 탓에 사회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전혀 거부감 없이 늠름해졌다는 확신이 들면 아빠도 사회로 복귀할 거라고. 그냥 복귀하면 써주질 않을 테니까 무기 하나쯤 벼리고 가야겠기에 공인중개사를 준비하는 거라고.

   여섯 살 무렵 처음 깎새 점방엘 드나든 이래 2년 동안 아이는 구김살 없이 잘 자라줬다. 최소한 깎새가 보기에. 아마도 라떼파파는 올 3월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을 시나브로 늘릴지 모를 일이다. 별 탈 없이 크고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으면 내리기 힘든 결정일 테다. 아이와 아빠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파트타임도 점점 연장이 되겠지. 유대감은 여전히 끈끈하겠지만 제가끔 바쁘게 일상을 보내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 어쩌면 라떼파파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빠와 아들의 모습일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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