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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20. 2024

전쟁은 게임이 아니다

   북쪽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남쪽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끌려 다니질 않는다고 주장하는 손님은 점방 바로 맞은편에서 인테리어를 하는 단골이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면 대통령이 미국과 모종의 합의를 이뤄내 핵무기를 한반도로 들여와 전진배치시킬 거라 확신했다. 근거가 있냐고 묻자 믿을 만한 소식통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 나간 소리 그만하랬더니 북쪽을 완전히 절멸시키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게다. 핵무기를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면 남아날 사람이 없을 끔찍한 참상이 불 보듯 뻔하다고 언성을 높이자 다같이 죽더라도 하는 수 없다고 맞불을 놓았다. 핵폭탄이 떨어질 좌표가 자기집 바로 위라고 해도 그런 소리를 입 밖에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전쟁이란 단어에 기함하는 깎새로서는 단골 하나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어도 할 말은 해야겠기에 강다짐했다. 

   "국군 사열을 받는데 '부대 열중 쉬어'란 말도 할 줄 모르는 군 통수권자가 전쟁이라뇨? 군대 근처에도 안 가본 대통령이 전투를 알겠어요, 전쟁을 알겠어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이란 작자가 인재개발원 공식 유튜브에다 대통령이 전쟁을 선언할 거라는 영상을 올리는 게 정상적인 나랍니까? 전쟁이 게임입니까?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나가 보고 얘기하라고 하세요. 어떤 줄 아세요? 오줌 질질 쌉니다!"

   1996년 9월 18일 강릉 해안가에서 좌초된 북한 소형 잠수함이 발견되었고 남으로 침투한 무장공비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돌입했다. 작전 중에 크고 작은 교전이 일어났고 아군 피해가 속출했다. 허공을 아예 찢어발기는 총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동반한다. 강원도 동북부 전방 철책에 투입된 깎새는 연일 수색과 매복에 동원됐고 점점 피로도가 쌓여갔다. 무장공비 잔당이 도주할 예상 퇴로 중 한 지점에 철책 경계 근무 인원을 뺀 1개 분대 인원을 데리고 야간 매복 작전을 펼쳤을 때다.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판초 우의로 위장한 뒤 입에 재갈을 물고 노끈을 손에다 묶어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기도비닉을 유지하려 애썼다.

   소대원들 앞이라 드러내지 않았지만 두려웠다. 무장공비 조준사격에 헬기에서 강하하는 공수부대원들이 죽어 나갔다. 적군인 줄 오인하고 쐈다가 아군이 몰살됐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조준사격은커녕 총을 마구 난사하다 아군을 쐈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렸다. 죽고 죽인다는 게 아직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에 준한 이 전장에서 절명이란 개죽음일 뿐이라고 회의하고 또 회의했다. 불빛 한 점 찾을 길 없는 전방 칠흑 같은 어둠이 죽음이라면 결단코 죽고 싶지 않았다. 입에 문 재갈을 뱉고 손에 묶은 노끈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선 소대원들에게 일렀다.

   "부시럭대라, 살고 싶으면."

   전장을 경험한 이는 전쟁을 함부로 논하지 않는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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