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mm 박격포

by 김대일

군대 얘기 하려니까 벌써부터 인터넷 창 닫는 소리가 들리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81mm 박격포 얘기로 몇 줄 남기겠다.

1995년 3월에 임관해 1997년에 전역했으니까 벌써 사반세기나 흘렀다. 3개월 간 초급장교 훈련을 받고 강원도 원통을 거점으로 한 산악사단 예하 보병대대로 배속되어 2년을 복무했다. 군사분계선 경계근무에 투입됐었고 강릉 일대에 잠수함 타고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26명을 소탕하는 작전이 49일 이어지는 내내 살 떨리는 비상근무를 견디기도 했다.

6개월짜리 방위병이나 사성 장군이나 예외없이 제 군생활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파란만장 그 자체라고 떠벌리지만 거기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고 군소리 쉬 나오지는 않을 만큼 나도 빡센 시절을 겪었었다. 물론 중화기중대 소대장이었던 내가 포다리, 포판, 포열로 분해하면 각각 30kg에 육박하는 것들을 이고 지고 메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을 이고 지고 메고 태백산맥의 도산검수刀山劍樹​를 제 앞마당인 양 뛰어다니는 깍짓동들을 무탈하게 관리하는 임무는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르는 애환이다.

그러고 본께 동북 산악부대 중에서도 81mm 박격포중대에서 복무한 애들은 군생활 뭣 빠지게 했을 거이다. 동고서저한 한반도 지형에서는 다같은 박격포중대라고 해도 닷지 트럭에 박격포를 싣고 드넓은 평지를 유람하듯 작전을 펼쳐야 정석인 곳이 있는 반면 트럭을 타고 싶어도 험준한 산세로 길 다운 길을 찾느니 길을 만드는 게 더 편해 박격포를 이고 지고 메고 산 속을 죽자살자 누벼야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동고 지형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다는 인제-원통의 박격포중대는 보병 지원 화기라는 특성 상 보병중대 꽁무니를 졸졸졸 쫓아다녀야 할 신세라 그들을 따라 고산준령을 넘는 게 다반사였다. 소총 들고 군장 메고 걷는 것도 버거운데 박격포를 분리한 포다리, 포판, 포열을 하나씩 더 짊어지고서는 뒷동산조차 1천 고지를 넘나드는 산악지대를 행군한다고 상상해 보라.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심리적 스트레스를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가끔 군생활을 돌이켜 보면 섬뜩하면서 진심으로 안도한다. 군대 내 사고는 요즘도 빈발해 여전히 골칫거리이긴 하지만 내가 복무했던 25년 전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는 통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 듯싶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 그것도 쌀 한 가마니 무게가 나가는 쇳덩이를 다루는 그들 속에 내재된 불만이 그들만의 장막 안에서 제어되지 못한 상태로 분출되던 장면을 숱하게 목격한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통제하려 들지 않았다. 아니 통제는커녕 그들이 알아서 무마하고 해결하도록 방관했다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다행스러운 건 이런 내 소극적 스탠스가 그들로 하여금 그들만의 룰을 인정해주는 뭘 좀 아는 관리자로 나를 오인해 결과적으로는 서로의 영역을 불가침하는 신사협정이 자연스레 이뤄짐으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유형의 땅에서 그럭저럭 지내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소대장의 소임을 저버린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하겠지만 달리 변명하진 않겠다. 하지만 그 똥포를 짊어지고 삐긋하는 순간 낭떠러지로 직행인 잔도를 새벽 이슬 맞으며 행군하던 유령같은 그들에게서 난생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낀 내가 위선적인 지휘자 대신에 진저리 쳐지는 그곳에서 제발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서로 협조하는 동조자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사실에 후회니 죄책감 따위는 없다. 그게 최선이라고 여겼으니까.

차량 운반이 가능하고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사격 정밀도가 향상된 81mm 박격포-ll의 최초 양산 물량을 군에 인도했다는 방위사업청 소식을 봤다. 그간 군에서 운용하던 81mm 박격포는 장병들이 직접 운반해야 했으나 신형 박격포는 장비와 운용 인원을 위한 전용차량을 도입해 기동성을 높이고 장병들의 피로도와 부상 위험을 줄였다고 한다.(연합뉴스 기사, 2021.07.29.)

이고 지고 메지 않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은 급상승한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바꾸겠다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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