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여름과 가을이 이 시처럼 대비되는 시를 본 적이 없다. 여름은 억압, 가을은 자유. 내 독해가 너무 억지인가. 말리지 마시라. 더 비약시켜 볼 테니.
귀뚜라미가 보내는 타전 소리, '귀뚜르르 뚜르르'가 내 귀엔 '아브라카다브라'로 들린다. 소원대로 이루어지리라는 뜻을 가진 주문은 히브리어 '아브렉 아드 하브라'에서 유래됐다고 해. '당신의 불꽃이 세상을 밝힐 것이다'가 원래 뜻이고. 근데,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나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란 구절과 묘하게 통하는 것 같지 않니?(여기서, 시 구절은 함축적이어서 '있을까'를 의문형으로 받아들이면 해석이 꼬여 버린다. '이고 싶다'나 '이어야 한다'로 읽어 줘야 겨우 알아듣긴다) 즉, '불꽃'을 '울음'으로 치환시키자 <귀뚜르르 뚜르르=아브라카타브라>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현령비현령.
시를 노래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안치환이 부르는 <귀뚜라미>는 시와 노래가 완벽하게 동화된 나의 띵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