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아 보이는 남자가 염색을 주문했다. 겉은 멀쩡한데 브러쉬로 까뒤집어 보니 영판 파뿌리였다. 염색약을 발라 주면서 다음 번 염색할 때는 머리카락 뿌리에 집중해 달라고 꼭 주문하라는 당부를 넌지시 건넸다. 신경써 준 게 고마웠는지 계산하면서 거스름돈을 안 받았다. 팁이라면서. 근데 그 팁이란 게 남자가 내야 할 요금의 60%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몇 마디 거든 게 팁 받을 일인지 차치물론하고 공돈에 살짝 우쭐했다.
팁(TIP)이 '신속한 처리(적절한 서비스)를 보장받기 위해서To Insure Promptness(Proper service)'라는 말의 두문자에서 유래됐다는 설을 본 적이 있다. 새치를 샅샅이 찾아 정성껏 도포해주겠다는 내 공약을 보장받기 위해 미리 건넨 행하라면 나는 팁 본연의 말뜻에 충실한 셈이다. 다음에 오기만 해라. 브러쉬가 닳도록 번들번들하게 발라줄 텐께.
중간에 돈이라는 마몬이 끼어 좀 아쉽긴 하지만 서비스 구매자와 제공하는 자 사이에 이처럼 건설적인 유대감이 형성되는 건 물질적 댓가 이전에 정서적으로 보람차다. 노동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쾌감이랄까.
그건 그렇고 팁이 일반화된 사회에서는 도대체 얼마를 지불하는 게 적당한지 궁금해 뒤져봤더니, 이발소에서 한 사람에게 머리를 자르고 면도, 샴푸를 하는 경우 그 사람에게 보통은 15~20%의 사례금을 준다고 한다.(위키백과) 1만 원짜리 커트를 한다면 종업원에게 팁으로 2천 원을 건넨다는 소린데 그 남자는 원래부터 통이 컸던 걸까. 아니면 팁 시중가를 모르고 있었던지. 이도 저도 아니면 염색, 샴푸를 도맡아 해준 종업원의 인품에 반해 있는 돈 없는 돈 다 내주고 싶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