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휴가

by 김대일

이용학원 휴가 기간이라 목요일까지는 온전히 집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 가을 문턱인 9월의 맨 첫 날을 다섯번 째 실기 시험 치르는 날로 받아둔 마당에 마음 급한 수험생으로선 학원 휴가가 영 못마땅하다. 하지만 어쩌랴 원장이 쉬겠다는데. 합격만 하면 뒤도 안 돌아볼 작정이지만 당장에 아쉬운 쪽은 나여서 학원 문 다시 열릴 때까지 집에서 틈틈이 연습할 요량으로 장비 한두 개 챙겨 올 수밖에 없었다.

어제였다. 열대야로 찌뿌드드한 몸뚱아리를 겨우 추슬러서 아침부터 부산스레 드라이와 아이론 퍼머를 연습했다. 한두 시간쯤 흘렀으려나. 문득 지금 뭣하고 있나 싶어 하던 거 후딱 매조지 짓고 무작정 밖을 나섰다. 그간 덮어 쓰고 다녔던 가발 대신 통풍 잘 되는 등산용 모자 쓰고 달랑 면티 하나 걸친 채로 오랜만에 달맞이공원 향하는 문탠로드를 걸었다. 내가 우리집을 자랑할 때 유일하게 꺼내 드는 히든 카드가 '우리집 뒷동산은 달맞이언덕'이다.

휴가철 아니랄까 봐서 2차선 도로는 해운대 방면으로든 그 반대인 송정 방면으로든 평소보다는 통행량이 많아 보였지만 걷는 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로 따라 인도 걷는 걸 즐기지만 오늘은 한적한 숲길을 택했다. 맹렬하게 내리쬐는 뙤약볕을 막아주는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를 걸으면서 모처럼만의 여유를 만끽하다. 언덕 아래로 탁 트인 청사포-미포 앞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지만 몸 속의 찌꺼기가 빠져 나간 듯 몹시 상쾌했다. 나흘 간의 억지 휴가 동안 부지런히 이 길을 걸을 테니 이참에 마음의 노폐물일랑 분리 배출시켰으면 좋겠다. 불안, 강박, 짜증, 신경질, 채 가시지 않아 썩어가는 슬픔까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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