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의 의미

by 김대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거덜이 났을 때 집안은 풍비박산이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아파트만은 제 명의로 돌린 마누라 덕에 돈 될 만한 가재도구에만 차압 딱지가 붙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폭삭 망할 줄 예상했다는 듯이 한 채권자가 잽싸게 미리 내 2008년식 아반떼에 가압류를 걸어뒀다. 10년 전 나는 밑바닥까지 추락했고 생애 첫 로시난테와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6575. 나는 아직도 녀석을 기억한다.

그 후 내 명의로 자동차보험료를 낸 적이 잠깐 있었다. 민락동에서 야간 포장마차를 한답시고 밤낮이 바뀐 생활이 이어지자 그게 그리 눈에 밟히셨는지 출퇴근만이라도 편히 다니라며 부친은 두 다리 걸쳐 싸게 받은 마티즈 경차를 내게 건네셨다. 갑작스런 부친 득병과 불가피하게 장사까지 막살할 지경에 이르자 불과 3개월 만에 중고 시장에 내놓게 된다. 결과적으로 팔긴 팔았는데 천신만고였다. 거래 성사 직전 최종 점검 차 속을 디다봤는데 당장 폐기처분해도 이상하지 않을 폐물로 판명되자 매수를 약속한 딜러가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전 소유주 말만 믿고 값을 치른 부친이 피해자다, 그 부친이 중병을 앓는 바람에 병원비 마련이 급하니 선처해 달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한 끝에 처음 거래가의 반절만 겨우 받고 처분했다. 아버지에게 차를 판 두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은 차 정비소 사장인데 사고로 파손된 차를 외양만 그럴싸하게 고친 뒤 호구인 부친에게 팔아 넘긴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치명적인 사고 가능성이 상존한 차를 몰고 다녔으니 매일매일이 그야말로 목숨을 건 질주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차값에 비해 턱없이 비싸게 차를 몬 셈이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버스, 지하철을 타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뚜벅이 생활에 이골이 났다. 하지만 들르기만 하면 온갖 것을 바리바리 챙겨 주는 충북 음성 처가행,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 가악중에 시급을 요할 때, 이걸 다 합친 총체적 난국일 때만은 차가 절실하다. 예전만 못한 기력 때문에라도 문명의 이기에 기대고 싶은 욕망은 불쑥불쑥 하늘을 찌른다.

마누라를 친동생처럼 여기는 그만둔 회사의 여자 부장이 자기가 모는 2014년식 모닝을 헐값에 팔겠다고 마누라한테 제안했다. 같은 연식 중고차 시세의 반값도 채 안 되는 파격적 조건이라 마누라는 솔깃해한다. 펜싱 연습에 힘들어 하는 막내딸을 픽업하자면 차가 필요하고 재래시장이나 대형 마트 가서 마음 편히 장을 보자면 차가 또 필수적이며 노구에 늘 아프고 쑤셔서 시난고난하는 친정엄마에게 달려가자면 차만 한 기동력이 어딨겠냐는 마누라 명분쌓기에 나는 가타부타 말 섞지 않는다. 다시없는 기회를 마다할 리 없어 모닝 운전석에 앉아 굿모닝! 인사 건네는 자신을 기정사실화한 마누라한테 찬물을 끼얹을 만큼 담대한 내가 아니므로.

내게 차는 이동수단의 의미만이 아니다. 차를 소유한다는 건 그 차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차를 모는 데 드는 기름값, 보험료, 수리비, 각종 소모품 비용 따위를 부담하더라도 가정 경제가 그리 휘청거리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다. 결국 자력갱생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니 차는 내게 의미심장하다. 마누라가 모닝 이야기를 꺼낸 뒤부터 생각의 생각을 거듭한다. 신중할 필요가 있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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