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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25. 2024

시 읽는 일요일(140)

유빙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커피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연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어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시 7연을 읽으면 모교 대학교의 지금은 거기에 있었다는 흔적조차 없는 시계탑이 떠오르고 거기서 만날 약속을 잡곤 하던 옛사랑도 떠오른다. 하지만 시 구절처럼 그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으깨어버린다 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최초의 입맞춤으로도 돌아갈 수가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쓸쓸한 단호함에 마음이 흔들(신형철)'리고 말았다 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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