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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26. 2024

구인의 조건

   하루는 낯선 여인이 스윽 들어왔다. 마침 이발 중인 손님 일행인 줄 알았지만 쭈뼛거리는 품이 뭔가를 아쉬워하는 행색이었다. 남성 커트점에서 여자가 아쉬워해야 할 게 뭔지 몰라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자 대뜸 "일하고 싶은데 자꾸 떨어져요"라고 운을 뗐다. 이용사 자격증 필기시험만 세 번 떨어졌다나. 실기는 당연히 손도 못 댔고.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점방 근방에 사는지라 오다가다 기웃거렸단다. 남자 원장 하는 짓짓이 팔팔해 보여 잘 삐대기만 하면 기적의 한 수쯤 전수받을 성싶은 기대로.

   일단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꼬집었다. 좋게 봐줘서 고맙기는 한데 썩 대단한 고수가 아니라 했다. 이용사 자격증이야 물론 땄지만 훈수 둘 만큼 고득점을 올리지는 못해서 알려줄 게 없다고, 그러니 필기든 실기든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이용학원 강사한테 배우는 게 합격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타일렀다. '못 먹어도 고!'란 심산이었으되 막상 실하게 건질 게 없어서인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진 여인은 종종 들르겠다는, 깍새로서는 별로 반갑지 않은 뒷말을 남긴 채 퇴장하려다 말고 맡긴 물건을 되찾으려는 듯 해반주그레한 면상을 다시 들이밀었다.

   "다른 사람 쓰지 말고 꼭 저 쓰세요. 월급 싸게 받을께요." 

   열의는 가상하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 구직 청탁. 뚱딴지가 따로없었다.

   "필기시험 합격할 궁리부터 하시는 게 우선인 듯싶습니다만."

   곁꾼이 절실하긴 하다. 점방 덩치를 키우자면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그런 예는 다른 데 찾아볼 것 없이 부친 점방 보면 뻔하다. 손님들로 미어터질지언정 둘이서 애면글면하다 보면 자기 차례가 금세 돌아올 거란 기대감에 손님은 망설임없이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와 기다릴 줄 안다. 게다가 그 자체로 '장사 잘 되는 점방'이라는 광고 효과까지 누림으로써 매상과 직결된다. 무엇보다 부친 은퇴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고 점방 두 곳을 번갈아 오가자면 믿을 만한 일꾼을 지금부터 물색해 육성해야 닥쳐서 허둥대질 않는다. 부친 점방은 관록 붙은 김 군이 중심을 잡고 있으니 안심이지만. 

   품삯을 넉넉하게 쳐주겠다고 하면 덤벼들 '스페어'는 지천에 깔렸음에도 돈으로 흥정하듯 '내 사람'을 뽑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구박을 바가지로 쓴다 한들 점방을 물려받겠다는 일념 하나로 10년 넘도록 부친 밑에서 꿋꿋하게 버티는 김 군은 그 속셈이 뻔하면서도 대견하다. 김 군처럼 어리석진 않아도 김 군처럼 우직한 인물이면 좋겠다. 고용주-고용인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서 인연을 이어갈 인물이면 좋겠다. 자기 몸값부터 먼저 들이밀기 전에 버드뷰로 자기 미래, 우리 점방 미래를 넓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인물이면 좋겠다. 그러니 그날 여자는 훗날을 도모하기에는 너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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