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Mar 01. 2024

앞으로 어쩐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펑퍼짐한 풍채로 미련곰탱이란 별명이 깔맞춤이었던 김 주사가, 공무원이라고 다같은 공무원은 아니라지만 아무리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업무 과다와 악성 민원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해도 기간제 교사에서 전직한 지 4년 만에 딴사람으로 탈바꿈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국문학과 남자 동기들과 3년 만에 재회한 지난 화요일. 뭐가 그리 급했는지 세상 먼저 등진 녀석, 연락두절인 녀석, 제가 싫어 안 끼는 녀석, 기타 등등 다 빼고 기껏 긁어모아 봐야 다섯 뿐인 일행 중 김 주사만 도드라져 보인 까닭은 후했던 몸집이 눈에 띄게 호리호리해진데다 생기 넘치는 낯빛이 하도 인상적이어서였다.

   솔로탈출이 난망한 노총각 주제에 어쩜 그리 챙기는 건강인지 삼시 세끼 식단 관리 들어간 지 꽤 됐고 퇴근하는 즉시 동네 헬스장에서 죽치고 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에는 점찍어 둔 헬창녀 어찌 해볼 불순한 속셈일 게 뻔하다고 가볍게 넘어가려다가 장복한 탈모 치료제 덕에 앞이마 쪽만 살짝 빼곤 풍성해진 머리숱에 군살없어 말쑥한 옷차림새가 품이 넓은 후드티로 가린다고 가렸음에도 불룩 튀어나온 올챙이배가 볼썽사납기 그지없는 깎새와 확연히 대비가 되는지라 30년지기 앞에서 난생 처음 쪽이 팔려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었다. 

   복부 비만 탓에 제 거시기가 안 보인 지 좀 됐다. 주체스럽게 찌는 살 때문에 온 가족의 원흉이 된 지도 오래고. 조석으로 살 빼라는 지청구를 안 늘어놓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돋을 게 분명한 마누라임에도 어디서 개가 짖나 무시하고 만다. 호빵맨이 되어 버린 욕실 거울 속 남자와 마주해서는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누워서 침을 뱉듯 씩둑거려도 그때뿐. 자고로 깎새는 몸뚱아리가 재산인지라 깍새 노릇 오래오래 해먹으려면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게 오직 비결인 바 그것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견강부회를 일삼는 것으로 낙착을 보곤 했더랬다.

   그리 요지부동이던 깎새가 평소 같으면 집으로 직행해 고봉밥을 퍼먹어야 할 저녁 퇴근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네 헬스장엘 들러 한 달 이용료를 계산한 것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면서 마누라는 나라 구한 표정을 지었고 막내딸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어댔지만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제서야 자기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깨닫게 된 깎새.

   헬스관장은 열심히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운동 열심히 해 식욕 더 돈다고 지상가상없이 처먹다간 예쁘게 살찌는 수가 있다며 겁박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깎새를 길들이려는 수작임에 틀림없다. 먹는 게 낙이었건만 눈치 봐가며 먹어야 한단 말인가. 

   이 모든 게 다 김 주사 그 녀석 때문이야. 아니 화요일 그 자리에 나가는 게 아니었어. 이렇게라도 가끔 안 만나면 영영 남 된다고 녀석들이 우는 시늉할 때 그냥 울게 냅두고 안 나갔어야 했어.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쩐다?

작가의 이전글 깎새가 비굴해지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