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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02. 2024

최초인 사진가

   제 이름자 앞에 '최초'니 '최고'라는 수식어를 서슴지 않고 갖다붙이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그런 치들일수록 쥐좆만한 성공을 침소봉대해 초면인 사람 기를 팍 죽여 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을 사는 데 필요한 추진력으로 삼는 저급한 호승심의 소유자일 게 뻔해서다. 그러니 최초로 야외 웨딩촬영을 도입한 장본인(동네 주름잡는 허풍선이 한 분 납시셨네 무시하다 부산에서 최초인지 한국에서 최초인지를 놓치고 말았다)이라고 밝힌 손님도 한통속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말면 그만일 텐데 주절대는 인생 궤적이 왠지 심상치가 않아 혹시 하는 호기심에 닫힌 귀를 쫑긋거렸다. 

   아기 사진 찍는 일로 밥 벌어먹고 살다가 우연히 기회를 잡은 일본 연수, 거기서 알게 된 야외 웨딩촬영 아이템을 한국에 들여와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단다. 갈퀴로 낙엽 긁어모으듯 돈을 벌어 예식장까지 사들이면서 승승장구했더랬다. 헌데 유행이란 최초라는 양분을 빨아먹고 진화하는 법이건만 두고두고 오래갈 것만 같던 개척자 프리미엄에 안주하다 뒤처지는 패착을 두고 말았다. 예비 부부들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장면을 늙다리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 했다. 참신하고 유니크한 차세대 프로페셔널 앞에 늘어선 피사체의 행렬을 뒤로 한 채 신기원을 이룬 개척자는 현장에서 밀려나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했다.  

   나날이 일거리가 줄어들어 더는 현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그길로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은퇴를 했다. 지금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영혼의 단짝이라는 카메라로 풍광을 찍으면서 소일한다. 잘 찍을 줄은 모르지만 보는 건 즐긴다면서 안드레 케르테츠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아는 대로 사진가 이름을 주워섬겼더니 돌아오는 시선이 제법 친근해졌다. 거기에 홀라당 고무되어 위로랍시고 이렇게 씩둑거렸다.

   "사진이라는 게 많이 찍고 오래 찍어야 관록이 쌓이는 분야라고 굳게 믿는 축입니다만, 그렇게 따지면 오랫동안 숙련의 시간을 거친 노련한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가장 찬란한 인생 컷이 나올 확률이 높을 텐데 연륜을 세련의 반대말쯤으로 여기는 세태가 안타깝습니다."

   점방 들어올 때처럼 큼직한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나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배낭 속에 들어있을 카메라가 최신형 DSLR인지 오래된 라이카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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