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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04. 2024

먹던 술도 떨어진다

   깎새 점방이 터를 잡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단골들 중에 유독 두 사람한테만 똑같은 핀잔을 듣는 게 예삿일은 아니다.

   일흔을 바라보면서도 샤기컷을 연상시키는 머리스타일을 고수하며 깔롱깨나 지기는 단골은 매달 세 번씩 점방을 찾아와 두 번은 커트만, 한 번은 커트와 염색을 주문한다. 요금을 계산하면서 커피 한 잔 사서 마시라면서 2천 원 팁을 잊지 않고 놓고 가는 센스는 그만의 매력이다. 다 좋은데 염색을 바를 무렵이면 핀잔이 꼭 날아온다. 빌미야 깎새가 제공한 바이지만.

   "검은색이죠?"

   "흑갈색! 도대체 언제 똑바로 물어보시려나?"

   땅딸막하지만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인 다른 단골은 깎새 동생뻘쯤 된다. 야무진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지 양 옆을 바싹 치켜 깎기를 즐기는 그가 매달 두 번은 꼭 와서 한 번은 커트와 두피마사지를, 다른 한 번은 커트와 (고급)염색, 거기에 두피마사지까지 풀세트로 주문하니 이보다 좋을 손님은 없다. 서글서글하지만 과묵한 편인 그가 돌변해 눈을 부라리고 퉁바리를 놓는 때도 역시 염색을 바르기 직전이다. 핀잔유발자는 어김없이 깎새고. 

   "흑갈색?"

   "검은색! 검은색! 혹시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죠 원장님? 재미없거든요!"

   헷갈리는 것도 엔간해야지 매번 이러니 사람 좋은 단골조차 쌍심지를 아니 세울 수가 없다. 반지빠른 깎새는 유구무언한 뒤 염색약을 얼른 바꾸면서 단골 안색을 슬슬 살핀다. 다행히 누그러지는 표정 속에 '나니까 받아주는 거야' 대인배 모드가 설핏 비치는 걸 놓치지 않고,

   "내가 이 모양이라니까. 지랄도 가지가지니 원."

   자학 모드로 응수해 단골들 헛웃음을 유도하면 해프닝은 일단 종료다. 허나 찝찝한 구석은 어쩌지 못한다. 돌아오는 19일이 점방 차린 지 벌써 두 해가 되는 날인데도 여직 단골 스타일을 헤맨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머리가 나쁘니 손발이 고생이란 말은 깎새를 두고 하는 표현이렷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랬다. 단골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 능글맞은 대응도 무용지물이 될 게 뻔하다. 먹던 술도 떨어지는 법이니 특히 단골일수록 더 살피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밥벌이로 직결되는 건 제발 좀 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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