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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r 30. 2024

겉절이 더 달라면 돈 받아요?

   이용사 자격증 따려고 한창 애면글면하던 2021년 즈음, 이용학원 근처 한 칼국수 점방에서 점심을 때우곤 했다. 칼국수 점방에서 내놓는 김치는 갓 담근 겉절이가 대부분이라 신 걸 꺼리는 깎새 입맛에는 딱이었다. 오로지 양념 맛에 아삭대는 식감만으로 꿀떡꿀떡 잘도 삼키는 좀 유별난 식성 탓에 그런 겉절이를 내놓는 식당에 한번 꽂히면 뱃속 거지가 끼니 때 됐다고 발광을 하면 결코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행해 버린다.

   칼국수 점방이라 메뉴가 단순할 것 같지만 칼국수, 수제비, 돌솥비빔밥 대분류 아래 칼국수와 수제비에 뭐가 들어갔는가에 따라 들깨칼국수, 해물칼국수, 바지락칼국수 및 바지락수제비 따위로 세분되어 나름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한 라인업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맛도 나쁘지 않아서 점심 한 끼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라 그 주변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데 점방 시그니처 매뉴는 의외로 돌솥비빔밥이어서 칼국수 전문이라는 간판을 무색하게 했다. 하지만 깎새는 자격증을 취득해 더이상 이용학원을 안 다녀도 돼 당연히 학원 근처에서 점심을 때우지 않아도 되기까지 단 한 번도 돌솥비빔밥을 주문한 적이 없다. 왜냐고? 입맛을 녹이는 겉절이에 맞는 구색은 칼국수밖에 없었으니까.

   달궈진 돌솥 안에 밥, 갖은 나물들이 양념장에 섞여 입으로 투입이 되면 돌솥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입 안은 그것들 씹는 것만으로도 열일이라서 겉절이의 아삭함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게다가 돌솥비빔밥 양념장이 겉절이 양념을 심각하게 상쇄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점방에서 가장 희멀건해 겉절이가 없으면 목 넘김 자체가 억울할 성싶은 그냥 칼국수('꾸미거나 딸린 것이 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민'을 붙여 이후부터는 '민칼국수'라고 일컫겠슴)만 주야장천 시켜 먹었다. 깎새가 그 점방을 집착한 까닭은 오로지 겉절이, 그것뿐이었으니까. 점심을 겉절이로 때운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겉절이가 주식이고 민칼국수는 그저 식욕을 돋우는 전채일 뿐이었으니.

   한번은 겉절이 맛이 가기 직전이었다. 시금털털한 풍미가 영 마땅치가 않아서 식사 끝내고 밥값 계산하면서 서빙과 카운터를 맡은 남자주인에게 갓 담근 겉절이를 맛보자면 깎새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정중하게 물었다. 주인장과 말문만 튼다면 김치 담그는 비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로 담근 김치를 맛볼 기회를 얻는다거나 혹시 깎새가 먹을 새금하지 않은 겉절이만 따로 냉장고에 보관해 뒀다가 꺼내 놓는 특혜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말이다. 올 적마다 민칼국수 곱배기만 시켜서 겉절이를 앞접시로 서너 그릇씩 퍼먹는 희한한 녀석을 진즉에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듯 남자주인은 "신 김치 못 먹겠다고 주방 사장님한테 말해 보슈"했다. 주방을 가리키는 눈은 찡긋거리면서.

   바지락수제비를 연거푸 시켜 먹은 적이 있었다. 희멀겋기는 민칼국수와 매일반이나 알이 통통한 바지락과 감자가 수제비 반죽과 잘 어울려 칼국수 면발하고는 다른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했다. 물론 겉절이와도 잘 어울렸고. 하여 깎새가 그 칼국수 점방 주문하는 메뉴에 민칼국수 외 바지락수제비가 추가됐다. 깎새가 점방에 들어서면 서빙을 맡은 남자주인이 "뭐 드릴까?" 대신 "칼국수 곱배기 드릴까?"로 물었다. "오늘은 바지락수제비로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오늘따라 웬 변덕이래?' 의아한 표정으로 주문을 받는 남자주인. 그래도 깎새 같은 단골은 호구다. 민칼국수 또는 바지락수제비 말고는 주문에 예외가 없으니 주방 할 일이 한결 수월했을 테니.

   바깥주인이 부재 중이었을 때다. 주방 안주인이 홀까지 나와 친히 주문을 받길래 "안녕하세요?"하고 아는 척을 했다.

   "뭘 드릴까? 돌솥비빔밥이 맛있는데 그거 드릴까?"

   이 무슨 망발이신지 서운함이 몰려왔다. '사장님, 내가 단골인 걸 정녕 잊으셨는지요?' 속상해진 깎새 주문하는 말에 뼈가 있다.

   "칼국수 아니면 수제비죠. 오늘은 칼국수 곱배기로!"

   장마 진 듯 온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제, 회사 마친 마누라를 픽업해 퇴근하려는데 비도 오고 출출한데 밖에서 끼니 때우고 들어가재서 동네 소문난 칼국수 점방을 향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칼국수를 시키면 꽁보리밥이 따라나오는 거기를 꽤 오랜만에 찾았는데 메뉴판 보다 뒤로 자빠질 뻔했다. 민칼국수 한 그릇에 8천 원, 바지락이니 소고기니 토핑 첨가하면 9천 원. 내놓은 겉절이를 다 먹어 바닥을 보이자 깎새가 서빙하는 직원을 비굴하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모, 겉절이 더 달라면 돈 받아요?"

   이용학원 근처 칼국수는 끽해야 5천 원이었는데 불과 3년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하기사 대파 한 단 850원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하는 대통령이 수반인 정부에서 칼국수 8천 원이 대수겠는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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