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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15. 2024

의대생 손님

   책을 보다가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면 머리 깎을 때가 됐다고 여기는 의대생이 있었다. 분기에 한 번꼴로 점방을 찾았는데 마감하려고 불을 다 끌 때쯤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서곤 했다. 2022년 6월께 손님으로 맨 처음 만난 날, 공부 못하고 뚱뚱한데다 머리 꼬라지까지 꾀죄죄하다고 면박을 주는 교수를 피할 수가 없다며 자못 비장한 투로 커트를 해 달라던 그가 하도 인상적이어서 아예 얼굴을 익혀뒀었다. 

   당시 본과 2년, 24살 먹었다고 밝힌 의대생은 볼 적마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고 나이에 안 어울리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자주 내쉬었다. 낌새가 수상해 "근심 있어요?" 물으니 "여기서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망설이다가 속엣말을 털어놓았다.

   조실부모하고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애면글면 의대생으로 키워 놓은 외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제 몫 해내는 의사가 반드시 되야 하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진댔다. 외할머니랑 살던 동네가 재개발돼 받은 보상금으로 두둑하진 않아도 외할머니 거처와 자기가 지금 사는 원룸 전세금을 댔지만 학비와 생활비는 과외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충당할 수 있었다. 의사가 된다 한들 개원할 밑천이 없는 처지라 남들 꺼리는 전공(구체적인 분야를 대는 대신 두루뭉술하게 외과라고만 둘러댔다)을 택해야 이 바닥에서 겨우 밥 벌어먹고 살겠다는 계산이 섰지만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고 자신감은 점점 떨어진다. 적성에도 안 맞고 능력도 달리는 걸 선택하는 게 과연 맞는 길인지 회의적이지만 딱히 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아 잡념만 머릿속에 잔뜩 쌓인다. 차라리 될 대로 되라 포기할까 싶다가도 자기를 여태 지탱케 해 준 외할머니를 떠올리면 당치도 않다. 하지만 의욕은 갈수록 떨어지고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고민은 그치질 않아 혹시 이게 번아웃은 아닌가 하고 덜컥 겁이 난다고. 

   어지간해서는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편이지만 고학생 넋두리에 그만 빨려들어가 버린 깎새. 하지만 난감했다. 그가 고민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는 대충 감을 잡았음에도 섣불리 훈수를 둘 자신이 없었던 게지. 부모가 계시고 그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자랐으며 머리카락이 눈을 찌를 때까지 공부한 적이 없었던 깎새가 조언이랍시고 지껄이는 것들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속 빈 강정이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러니 입이 근질근질거려도 쉽사리 말문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꺼낸 그의 고백이 허공에서 속절없이 사라지는 걸 그냥 놔둘 수가 없었던 까닭에 깎새는 능청스럽게 자기 경험담이라면서 다음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10년 전 민락동에서 깎새가 포장마차 장사를 하던 무렵에 겪었던 일화다. 


​   는개비 뿌리던 늦은 밤, 두 청년은 장어를 직접 구워 가며 소주를 마셔 댔다. 귓전을 울리는 대화는 둘이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건 확실한데 각자 친했던 친구 이름 몇몇을 들먹이다 보니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을 야구선수 출신인 친구가 뒤늦게 알아챘고 그걸 어처구니 없어 하는 맞은편 청년이 열심히 타박하는 내용이었다. 대충 호구조사를 마쳤는지 주거니받거니 잔 터는 속도가 빨라졌다. 소주 다섯 병을 금세 비웠는데도 취한 기색 하나 없이 대화가 이어지는데 아까보다 자못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한참 지나 야구선수 출신이라는 청년이 볼일 보러 잠깐 나간 사이 맞은편 청년이 미리 계산하겠다며 다가왔다. 잔돈 건네다 말고 그 놈의 빌어먹을 오지랖이 동했다.

   "친구는 지금도 야구 계속하나요? 운동선수라서 그런지 어깨가 떠억허니 벌어졌드만."

   "그만둔 지 오래됐어요. 지금은 공부해요."

   호기심 발동.

   "올해 나이가?"

   "스물여덟입니다."

   "공부라 하면?"

   "법 공부해요 저 친구. D대학교."

   "법학대학원 다니시는구나. 법 공부하느라 고생깨나 하겠구려. 그럼 우리 친구는?"

   "의대 다녔어요 Y대학교."

   "엉?"

   "실습 나갔다가 못 볼 꼴을 많이 봐 휴학해 버렸어요. 그만 다닐라구요."

   "집이?"

   "부산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편하게 술 마시죠."

   "부모님이 적잖이 실망하시겠는데. 혹시 그러라고 하시던가요?"

   "어머니만 계신데 진지하게 말씀드려야죠."

   "옛날 같진 않겠지만 의사가 그래도 여전히 각광받는 직업인데…. 염두에 둔 건 있수?"

   "요리할라구요. 그래서 그 쪽 일자리 알아보는 중입니다."

   "상심이 크실 텐데, 어머님이."

   "누나가 의사라서 괜찮을 겁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초면에 이런 말 실례인 게 맞지만, 우여곡절이 많은 게 인생입디다. 그러니 못 살겠단 소릴 입에 달고 살지. 직업이라는 게 어쩌면 험난한 세파를 막아줄 방파제 역할을 해줄 수도 있어요.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순 없지만 내 생각에 좀 더 신중하면 어떨까 싶은데."

   또 다시 침묵.

   "나야 의대 생리를 알 길이 없으니 병원 문 박차고 나올 그 못 볼 꼴이 뭔지 당최 모르겠지만서도 스물여덟이면 적은 나이도 아닌데 모험이라는 게…."

   "잘 먹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볼일 마친 동행이 들어오자 계산 끝냈다며 데리고 나갔다. 그날 소회를 이렇게 적었다.


    무람없는 입방정이기로서니 속은 후련하더라. 불현듯 벼랑 끝에 걸린 외줄 위에서 곡예를 자처하는 아슬아슬한 불안을 엿보았다면 내가 너무 나간 걸까? 내 스물여덟 살 적에도 세상 무서울 거 없이 뭐든 다 할 것 같고 뭐든 다 될 것 같았다. 허나 청춘은 이울기 마련이고 가뭇없이 탕진해 버리고 남은 건 빛 바랜 기백뿐. 섣부른 전복을 꿈꾸기보다는 너울대는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기는 교활함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런데 개똥철학인 양 주접을 떨지만 왜 이리 자꾸 섬뜩한 기분이 드는 걸까. 상식이라는 명분의 잣대를 마구 들이대 주체적인 삶의 태도에 딴지나 거는 엉터리 보수주의자로 혹시 전락한 건 아닌지 두려워서일 게다.


​   두 청년이 왔다 간 몇 달 뒤, 의사를 포기한 청년이 뷔페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이자 애인이라며 한 여자와 함께 다시 포장마차를 찾았다. 뷔페 동료들과 회식을 가질 텐데 여기로 정했다면서. 대신 회식은 자기네들 근무가 끝난 이후여야 해서 새벽 1시로 잡겠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다른 점방 파장할 시각에 회식을 시작하면 밤을 꼴딱 새야 할 판이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매상 올릴 기회이기도 하려니와 청년의 더없이 밝고 행복한 표정에 덩달아 동해서. 결국 그 청년이 옳았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던 경험이었다. 


​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아차 싶었다.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뒤늦게 깨달아서. 의대생이라는 것 외엔 비슷한 구석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데도 뚱딴지같이 들이댔으니 주책맞을 오지랖하고는. 그럼에도 기왕 꺼냈으니 어떻게든 원만하게 수습은 해야겠기에 순간적으로 안 돌아가는 머리를 엄청 굴렸다. 의대 때려치우고 요리사가 된 청년이나 당신이나 인생의 목표가 뚜렷하다는 건 비슷하지 않나. 물론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있다. 그걸 지혜롭게 극복해 내야지만 다음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 내가 보기에 당신은 좀 쉬어야 할 것 같다. 단 며칠간만이라도 좋으니 술이나 진탕 퍼마시다가 온종일 디비 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도 저도 아니 되겠으면 휴학도 고려해 볼 만하다(잠자코 듣고 있던 고학생이 이 대목에서는 정색을 했다. 외운 거 다 까먹을 수 있어 휴학은 위험하다면서. 뭘 얼마나 외워 대야 의사 구실을 할 수 있는가. 참으로 대단한 직업이다). 되는대로 씨불일수록 더 민망해질 게 뻔해 급히 제안 하나를 냈다. 내가 당신한테 베풀 건 없고 오늘은 커트 요금만 내고 두피마사지 한 번 받아 보시라. 은근히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테니. 

   마사지 기계로 머리를 문대고 머리 여기저기를 누르면서 마사지를 해 준 다음 감겨 줬더니 시원하다면서 고마워했다. 그러고는 요금을 내 계좌로 이체하면서 두피마사지 요금까지 얹어서 줬다. 이러면 제안을 한 내가 뭐가 되냐고 섭섭해했더니 고학생 왈,

   "마음만 받겠습니다. 이거 낼 형편은 됩니다."

   돼먹잖게 입 놀린 후유증이 크다. 착잡했다. 이후로 그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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