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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18. 2024

절친

   남편 노는 꼴을 절대 못 보는 마누라가 그제 휴무일에 자동차 종합검사를 예약해뒀다. 해운대 검사소 가는 길에 해운대구청 별관 격인 문화복합센터 건물이 보여서 김주사가 떠올랐다. 검사 마치고 한번 디다보까?

   연락하니 구실이라도 잡은 듯 반갑게 맞아준다. 1층 카페 메뉴 중에 제일 비싼 걸로 시키랬지만 거기서 거기라 카푸치노 한 잔으로 퉁친다. 

   기간제 교사에서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전향한 지가 언젠데 벌써 퇴직을 걱정할 때가 되었다. 올해로 문화복합센터 근무가 끝나면 동사무소로 발령이 날 텐데 말년이 편하게 널널한 동네로 보내 달라고 간청을 할까 고민 중이란다. 해운대구 그런 동네 여럿 중에 깎새 동네도 끼어 있어 운좋게 거기로 떨어지면 가끔 둘이서 편하게 소주잔 기울이는 그림이 제법 그럴싸해서 깎새도 부추겼다. 허나 쉽지는 않을 게다. 속은 안 그러면서 아쉬운 소리 제대로 못하는 성정이 어디 가겠나. 앓는 소리 한두 마디 꺼내들었다가 상급자가 여기 가라면 "예", 저기 가래도 또 "예" 군말이 없을 미련곰탱이일 테니.

   혼자 사는 노총각이 세상 편할 것 같지만 염병할 적적함이 면상에서 떨어져 나가기는 참 어렵다. 화색이 돌자면 여자가 꼭 필요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일하는 데서 찾아 보랬더니 발령받아 가는 곳마다 임자 있는 유부녀들뿐이라나. 하긴 과 동기로 만나 30년 넘게 지켜본 바로 지지리도 여복 없는 녀석으로 유명해서 저리 살다 죽어도 딱히 원통할 리 없을지도.

   지나는 길에 들러 카푸치노 한 잔 부담없이 얻어 마실 수 있는 친구는 나이가 들수록 드물어지니 친구랍시고 괜히 남용했다가는 닳아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급적 꽁꽁 싸매 마음 금고에라도 고이 보관해 두는 게 이롭겠다. 아끼다 설령 똥이 된다 해도. 깎새는 대신 꾀를 부린다. 글 끼적이는 걸 낙으로 삼은 이래 미련곰탱이 김주사를 울궈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녀석이 끼친 반향이 엄청나서이겠지만 친구를 애지중지 다루고 싶은 깎새의 안간힘이기도 하다.

   김주사와 헤어진 뒤 오래 전 여러 글들 중에 하나가 새삼 떠올라 꺼내 읽었다. 


​   (2017년 8월 14일에 쓴 글)

   금요일 퇴근 무렵 히키코모리 김 선생을 불러냈다. 여기저기 타진을 했지만 불금 저녁을 산적 같은 머스마와 어울리긴 싫어선지 신통찮은 대답들만 돌아왔고 마지막으로 큰 기대 없이 김 선생 의중을 떠봤는데 어렵쇼! OK란다. 녀석 아니었음 적적한 심사를 혼술로 달랠 뻔했는데 선뜻 달려와준 기특함에 적잖이 감동했다.

   ​한 학기만 맡는 조건이긴 해도 9월부터 아무개 여고 기간제 근무가 결정된 직후여서인지 한결 여유로워 보이는 녀석과 마주하고 보니 오늘이야말로 응어리진 스트레스나 모조리 날려버리리라 작심하고 소맥을 만 폭탄주를 거푸 들이켰다. 안주로는 뒷담화가 최고라며 연신 입을 놀려대면서 말이다.

   ​곰과 소가 흘레붙어 새끼를 낳으면 딱 이런 놈일 거라고 김 선생을 볼 적마다 상상하다 피식 쪼갠다. 싫어도 싫은 내색 못 한 채 속만 앓다 마는 녀석을 곰같이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소마냥 우직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선다. 하여 정당하게 제 잇속조차 못 챙기는 꼴이 안쓰러워 돼먹잖은 훈수질로 가르치려 들 때가 잦았다.

   하지만 피차 그렇고 그런 형편이란 애틋한 감정이 그날따라 유난히 동병상련을 자극해서인지 오히려 녀석이 풀어내는 카운슬링에 심심한 위로가 됐고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심리학 교수로 열연한 로빈 윌리엄스와 참 많이 닮았단 어처구니없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소맥 몇 순배 돌던 술자리가 바짝 진지해지자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누군들 힘겨웠던 날이 없었겠냐” 며 녀석이 뚱딴지처럼 뇌까렸다. 그러고는 어느 누구한테 단 한 번도 꺼내 놓지 않았다는 10여 년 전 행적을 건조하기 짝이 없는 음색으로 자분자분하게 실토하자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게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찌릿찌릿했다.

   ​변변한 직장 없이 30대 중반에 겨우 들어간 교육대학원, 등록금 마련하기도 빠듯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불거진 가족 빚까지 떠안아야 하는 이중고에 처하자 대학원 3년 내내 신문 배달, 음식 배달, 과외, 학원 강사 따위 돈이 되면 닥치는 대로 일하는 강행군으로 일관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배달원으로 일하던 음식점 주인 아저씨께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더니 ‘처음 손을 봤을 때부터 이 바닥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지. 그래도 용케 잘 참아왔구려.’ 그러더라.”


​   ​고대 로마 사람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했다는 첫 인사말은,

   Si vales bene valeo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였단다. 타인의 안부가 먼저 중요한, 그래서 ‘그대가 평안해야 나도 안녕하다’는 그들의 인사가 문득 마음 따뜻하게 다가온다.(한동일, 『라틴어 수업』, 흐름출판, 2017에서)


​   간단하게 입가심으로 끝낸 2차를 뒤로 하고 작별을 고할 때,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어중간한 여름 밤 어느 길에 서서 세상의 짙은 어둠을 뚫고 다 괜찮아질 거란 인사를 건넨 녀석에게 가슴 뿌듯하도록 감사를 느끼며 나 또한 녀석의 처진 어깨에다 대고 읊조린다.

   ​​Si vales bene va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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