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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17. 2024

깎새라 불러다오

   중국사를 중심으로 놓고 봤을 때 '몽고 蒙古'는 한자로 읽는 거다. '몽골'은 몽골어 원어를 최대한 가져오려는 거고. 그러니 '몽골'은 당사자인 몽골인이 불러주기를 바라는 이름이고 '몽고'는 그 당사자와는 상관없이 누군가가 정해 놓은 이름이다. 한자어 '몽고'는 과거 한족漢族 국가에서 유목민 중 하나인 '몽골'을 자기네 한자로 가차한 글자다. 최대한 비슷한 걸 갖다붙이는데 보통은 좋은 글자를 갖다붙이지 않는다. 왜? 한족 국가 중심에서 봤을 때 나머지는 전부 오랑캐이기 때문이다. 오랑캐에 좋은 한자를 붙일 리 없으니까. 그 대표적인 게 '몽골'이다. 그래서 그들이 썼던 한자가 무지몽매할, 어리석을 '몽 蒙', 그리고 옛 '고 古' 자를 쓰는데 옛 '고 古'에는 옛날이라는 평범한 뜻도 있지만 고루하다, 오래됐다, 낡았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일종의 멸칭인 셈이다. 몽골 사람들은 '몽고蒙古'라고 불리는 걸 무진장 싫어한다. (허진모 작가)


​   ​우호적인 선린 관계가 유지되었다면 굳이 멸칭을 붙이지는 않았을 테지만 오랫동안 몽골족에 시달렸던 중국인들의 몽골에 대한 불편한 심사가 '몽고'에 그대로 드러났다고 보면 될 것이다. '왜놈'이니 '되놈', '로스케' 따위와 우리와 다른 이민족이면 '오랑캐'로 일단 낮잡아 부르는 우리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러고 보면 멸칭이란 어쩌면 인간 본성에 맞닿아 있는 내용인지 모를 일이다.

   새뮤얼 하야카와라는 캐나다 출신 일본계 미국인 언어학자는 『생각과 행동 속의 언어』라는 책에서 언어의 함축 의미를 따져보며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을 맞세웠다. 하야카와가 든 예를 옮기자면 "이런 버러지같은 놈!You filthy scum!"은 전형적인 으르렁말이고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여자야You're the sweetest girl in all the world"는 전형적인 가르랑말이다. 앞의 말은 남을 위협하거나 모욕하는 으르렁거림이고, 뒤의 말은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듯 남의 호감을 사려는 언어행위다. 으르렁말이나 가르랑말에서는 언어의 소통 기능 가운데 중립적 정보 기능이 거의 사라지고, 그 대신 표현적 기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이런 말들에 담긴 의미는 개념보다 정서에 가깝다. (고종석, 『말들의 풍경』, 개마고원, 2007, 192~193쪽)

   그런 의미에서 멸칭도 으르렁말의 일종이라고 보면 되고 정보 제공보다는 남이나 타국을 업신여기려는 정서가 강하다. 그러니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명칭에는 신경쓰지 않는 게 좋겠으나 말처럼 쉽지가 않다. 

   공식적인 '이발사' 명칭 대신 '깎새'란 멸칭으로 불리워지는 걸 별로 개의치 않는 깎새다. 오히려 스스로를 '깎새'라 부르며 즐기기까지 한다. 이는 자신감의 발로에서 기인한다. 요금 5천 원 싼 맛에 맡겼더니 바버샵 헤어 디자이너 못지않은 스타일로 탈바꿈하는 반전은 통쾌 그 자체다. '깎새'라는 허름한 멸칭 뒤에 도사린 잠재력은 전복을 꿈꾸는 혁명가적 의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개뿔도 없는 가식쟁이들이여, 계속 '깎새'라 불러다오. 그럴수록 전의는 불타오르고 입신의 경지를 향한 집념은 고양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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