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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23. 2024

큰딸 중간고사

   중간고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히스테리컬할 큰딸이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동네 독서실로 출근해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한 지 좀 됐다. 독서실에 앉아 전공책을 읽고 태블릿 PC로 자료를 찾는 일련의 행위가 공부가 맞을진대 아무 것도 공부한 게 없어 머릿속이 텅텅 비어 중간고사를 망칠 게 틀림없다고 울상이다. 그러더니 곧 이어질 기말고사 때는 결코 허술하게 준비하지 않겠노라 칼을 간다. 

   화요일, 즉 오늘이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라는데 문제를 풀다 졸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독서실에서 밤을 새고 어제 새벽 4시 조금 넘은 시각에 귀가해 머리만 감고 곧장 학교 도서관으로 직행하겠다고 해서 어차피 점방 가는 길이니 서면역(1호선을 타면 서면역에서 부산대학교까지 30분이면 너끈히 도착)까지 차로 바래다 주었다. 그날은 아예 학교 도서관에서 밤을 새겠다고 해서 요즘 학교 도서관은 24시간 내내 돌아가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땅콩만한 녀석이 어디서 그런 기백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중고등학생 때부터 밤 새는 걸 밥 먹듯 하는 바람에 혹시 키가 안 큰 게 아닌가 안쓰럽다. 

   큰딸이 중간고사에 목을 매는 까닭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편입을 해 처음 맞닥뜨린 시험이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뼉다구'란 멸시를 일거에 날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남보다 월등하게 우수한 시험 점수를 받는 거다. 일심전력을 다해 이 학과에 들어왔고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 녀석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중간고사 준비에 집착하고 있는 게다. 저토록 무시무시한 집념은 깎새한테서도 제 어미한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돌연변이라서 자식이지만 질린다. 

   한편으로는 딱하고 두렵다.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기 실존을 드러내 보일 수 없다는 한계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후과로 건강에 혹시 악영향을 끼치지나 않을지.

   하지만, 품 안의 자식이랬다.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따를 자식이면 애시당초 걱정도 안 했다. 그저 묵묵히 응원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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