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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30. 2024

무서운 건 샤덴프로이데가 전염되는 것

   타인이 잘 되는 것에 대한 시기심, 질투를 빗댄 표현으로 쓰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과 유사해 보이지만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Schaden(아픔)+Freude(환희)=The Joy of Pain)'를 고스란히 드러내기에는 아쉽다. 문자 그대로 하면 ‘해로운 기쁨’, 뉘앙스를 살리면 ‘사악한 즐거움’이라는 '샤덴프로이데'가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느끼는 쾌감을 이르는 말이라면 '잘코사니'(미운 사람이 불행을 당해 고소하게 여겨지는 일)란 우리말이 가장 비슷하지 싶다.  

   샤덴프로이데의 대표적 사례로 2018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승리하자 영국과 네덜란드 언론이 독일의 패배를 고소해하는 보도로 대서특필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조 4위를 한 독일 성적표에 가위 표시를 한 절단선을 그려 놓고선 "오려 두었다가, 우울할 때면 꺼내서 즐기세요"라는 조롱까지 등장했단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인간이 지닌 가장 악한 감정이라고 했던 샤덴프로이데가 실은 우리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경쟁의식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힌 어떤 칼럼에 동조의 한 표를 보내는 바이다.


​   한국 교육의 동력이자 메커니즘인 경쟁은 친구가 잘해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동창과, 입사 동기와, 이웃과, 본 적도 없는 엄마 친구 자식과 비교하며 나의 우위를 찾는다. 나와 남을, 우리와 그들을 가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하기보다 무탈한 나의 현재에 안도하며 비교우위를 즐긴다. 세상이 온통 제로섬인 것처럼 누군가 잘되면 내가 뒤처지는 것 같고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면 불행의 할당량이 나를 비켜가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내가 속한 또는 내가 지지하는 우리 그룹에 나쁜 일이 생긴다면 걱정하고 슬퍼하겠지만 '우리'가 아닌 '그들'에게는 불행이 닥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만 괜찮으면 상관없다.(하수정 북유럽연구소 소장, <세상읽기-타인의 불행에 즐거워하는 심술궂은 마음>, 경향신문,  2020.02.07에서) 


​   필자는 칼럼 말미에 샤덴프로이데가 전염된다는 게 무섭다고 했다.


​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느꼈더라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던 감정이 남이 표현하는 것을 보면 대범해진다. 익명을 보장받으면 잔인해진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기를 바라게 되기까지 한다. 소리 없이 퍼지는 샤덴프로이데는 악성 바이러스만큼이나 전염력이 강하고 위험하다.(위 칼럼)


​   여당이 파멸적인 총선 참패를 당한 뒤 총선 참패 원인과 보수 재건의 길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30년 책임당원이라고 밝힌 패널이 쓴소리를 냈다.

   "우리 당이 이렇게 종적 권위주의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렇게 국민들을 실망을 시키고 계속 이러려면 당 해체해버려야 돼요. 사람도 다 바꿔야 돼요. 그 시대에 맞게끔 엄중하게 그렇게 정치를 해야 되는데 어떻게 국민들을 이렇게 얕잡아보고 이런 정치를 하느냐는 이 말이에요 계속해서."

   "이태원에서 그 젊은 아이들이 159명인가 죽었을 때 이거 큰일났구나. 정부가,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관계 장관들이 바로 사퇴를 하고 치안 책임자가 물러나고 이렇게 했어야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이말에요."

   "권력을 왜 쥐어? 앞으로 이런 정치 계속하려면 다 그만두세요. 역사를 갖다가 어떻게 해석을 하고 이 따위를 하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위로의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과격한 말씀 드려 죄송합니다. 혁파하셔야 돼!"

   독일 패배에 고소해하는 영국, 네덜란드 기분이 어떤 건지 알고도 남을 만큼 아주아주 잘코사니면서도 이 나라 정치의 한 축인 보수(대한민국 국회는 진보인 척 하는 보수와 보수인 척하는 극우뿐이라고 하지만 아무튼)가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됐는지 참 딱하다. 그런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있으니 샤덴프로이데가 아직 전염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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