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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Apr 29. 2024

애매하거든 말을 말자

   그저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우리가 단어를 잘못 쓰고 함부로 쓰는 무지를 꼬집으면서 보다 신중한 단어 생활을 당부하려고 저자가 든 사례는 가정의 달을 맞이하야 쏙 와닿는다.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지만 이른바 셀럽 연예인 부부가 방송에 나와 서로에게 갖은 애정공세를 퍼부으며 잉꼬부부를 과시하다가 하루아침에 파경 소식을 전하는 느닷없음을 목격하며 드는 생각은 안타까움 이전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또한 그러는 그들에게 닮은 점이 있다면 '사랑'이라는 단어의 남발이었다. 이미 쇼 윈도우 부부로 전락했으면서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당장이라도 침을 뱉고 싶은 상대 면상에다 대고 "사랑해"(우웩)를 읊는 그들의 농익은 연기는 연기대상감이긴 하나 차라리 우울하다. 

   가족끼리 '사랑한다'는 표현은 느글거려 싫지만 '사랑'의 말뜻을 정확하게 알아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부부로는 함께 살고 싶다. 4월30일 결혼기념일을 기념하야 네 식구가 함께 월남쌈을 싸먹으면서 즐거운 저녁 한때를 보낼 즈음, 밥 먹는 걸로 기념일을 퉁치기가 어째 좀 아쉬우니 딸아이들까지 대동한 김에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 부부처럼 그럴싸하게 생색내는 장면을 연출할까 보다.

   "마이 무라, 마누라."


​   어떤 단어는 그저 그럴싸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음, 저기 걸어오는 저 사람이 왠지 우울해 보이는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일단 '사랑한다'는 말을 던져볼까. 음,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일단 칼럼에 '창조 경제'라는 단어를 써볼까. 음, 요즘 유행하는 단어라니 일단 제안서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를 써볼까. 음, 사람들이 열광하는 단어이니 성명서에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넣어볼까. 다수가 공분하는 단어이니 '신자유주의'라는 라벨을 붙여볼까. 그런 식으로 사용될 때, 그 단어는 "멍멍!"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라리 특정 단어를 집요하게 기피하는 사람이 그 단어 뜻을 더 잘 알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부부는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서로 간에 해본 적이 없다. 사랑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고귀한 뜻을 감안할 때, 감히 부부 간에 사용할 수 없다는 데 상호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며 위기를 미봉하는 이들보다는 이 부부가 사랑이라는 말뜻을 더 정확히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용되는 단어, 남용되는 단어, 모호한 단어, 다양한 용례가 있는 단어일수록, 신중한 사람들은 해당 단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그 단어를 가능한 한 정확히 정의하고자 든다.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어크로스, 5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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