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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02. 2024

병리적 인간

   점방을 모처럼 찾아 커트와 염색을 하고 가는 당숙을 배웅하면서 "안녕히 가세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지나가던 행인이 그런 깎새가 거슬렸는지 듣도 보도 못한 쌍욕을 끌어다가 왕창 퍼부었다. 느닷없이 벌어지다 보니 깎새는 황당하다 못해 얼음이 되어 버렸고 당숙은 가던 걸음을 멈춘 채 깎새와 그 행인을 갈마보며 어찌 된 영문인지 따져 보려 했지만 인과라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더 기가 찬 건 그 다음이었다. 그 행인 가던 길 가면서 눈에 띄는 타인이 누구건 간에 깎새한테 퍼붓던 쌍욕을 고스란히 재생하는 신기를 시전하는 게 아닌가. 

   황당한 광경은 또 있다. 멀쩡하게 생긴 여자였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걸어가다가 깎새 점방 앞에서 딱 멈춰 서서는 그길로 대성통곡을 한다. 아마 제 부모가 죽었어도 그렇게까지 처량하고 슬프지는 않을 텐데 그 울음소리란 게 예전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처녀귀신의 한 맺힌 통곡은 말석에도 못 낄 정도였으니 대충 감이 올 게다. 분출하지 않으면 속 터져 죽을 사연이 있어서겠지 이해하려고 해도 제 점방 앞에서 10분 넘게 하염없이 울어제끼는 모양새를 곱게 보아줄 장사치는 어디에도 없다.

   장면 하나 더. 머리 깎다 말고 바깥을 우연히 쳐다봤다가 멀끔한 면상을 한 중년 남자 걸음걸이가 왠지 불안해 보이는 걸 목격했다 대낮인데. 커트 작업을 마친 뒤 설마설마하며 바깥을 나가봤더니 깎새 점방 옆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중년 남자. 의식을 잃었으면 곧장 119로 연락했을 테지만 축 늘어져서는 혼자 흥얼흥얼거리는데다 스마트폰을 자꾸 깨작거리는 걸로 봐서는 구급대원 헛걸음 시킬 게 뻔해 관뒀다. 정신 나간 상태로 뭘하려는 건지 유심히 지켜보니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하려는 손짓이었지만 뜻대로 안 되는지 욕이 섞인 투정만 되풀이했다. 주정뱅이라는 결론이 나자 정나미가 뚝 떨어져 점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지났을까. 딸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젊은 처자가 다가오더니 중년 남자를 부축해 가 버렸다. 늘상 벌어지는 일이라는 듯 익숙하게.

   하나같이 멀쩡하게 생긴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행색은 다른 행인에 비해 눈에 확 띄게 병리적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괴상하게 만들었을지 궁금했지만 더는 다가서지 않았다. 오지랖 괜히 부렸다가 무슨 곤욕을 치를지 모를 요즘 세상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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