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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03. 2024

연암과 간서치

   안대회가 쓴 『조선의 명문장가들』(휴머니스트, 2016)은 조선 후기 문장가 23명과 그들이 쓴 174편의 산문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읽다가 가장 '눈이 번쩍 뜨이는' 대목은 역시 <눈이 번쩍 뜨이는 문장, 박지원>이란 소제목 아래 펼쳐진 연암에 관한 내용이다. 연암체燕巖體를 정리하는 부분을 간략하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상에 대한 다면적 접근과 입체적 묘사, 둘째, 격식과 투식, 진부하고 상투적인 글자와 어투의 배격, 셋째, 얕고 들뜬 문장, 용렬하고 속된 병통의 제거, 넷째, 비유와 반어, 속어의 빈번한 사용, 다섯째, 장난기와 유머의 분위기가 많은 점을 꼽았다(『조선의 명문장가들』, 106쪽). 틀에 박힌 식상한 내용과 형식에서 탈피해 기발하고 참신하면서도 파격적인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체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연암은 동시대 문장가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적 인간’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떤 형식을 갖추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필치로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낀 것을 간단하게 적는 글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 소품문小品文의 대가로 청장관 이덕무를 꼽는다. 그의 소품문에 깔린 정신은, 기존의 문학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개척하고, 사물을 대상으로 할 때 선입관을 배제하고 치밀하게 관찰해 글을 쓰며, 세계의 가상에 빠지지 말고 인정물태人情物態(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세상 물정)의 진실을 드러내도록 하고, 예민하고 감성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었단다(같은 책, 184쪽).

   한쪽은 당대 유력 정치세력인 노론 가문 출신이고 다른 사람은 벼슬길에 한계가 있던 차별 받는 서얼 출신이었지만 연암과 청장관 두 사람의 우애는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이 추구하는 작법의 도엔 비슷한 면이 엿보인다. 인정물태의 진실에 접근해 할 말은 하되 너무 진중하거나 심오할 것까진 없이 넉살 좋게 내 식대로 쓰는 것. 다만 요즘으로 치자면 이모티콘이나 급식체 따위를 섞어가면서 장난기 농후하고 익살맞게 글 쓰는 연암과 달리 심혈을 기울여 한 글자 한 글자를 절차탁마하는 불면의 문학 청년이 연상되는 청장관은 타고난 배경이 다른 데서 비롯된 기질의 차이라고 넘겨짚을 뿐이다.

   한문을 읽고 그 뜻을 이해할 줄 안다면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으면서 감탄해 마지않던 말맛처럼 한문 문장이 품은 문자향文字香도 만끽할 수 있으련만 능력이 딱 번역본까지라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애써 위안을 삼자면, 연암, 청장관으로 대표되는 문장가들이나 그들의 글을 옮긴 번역가나 옮긴 글을 읽는 독자나 한반도라는 같은 공간에서 살았고 산다는 동질성에 기댄 덕분에 문호라고 유명짜한들 이국적이어서 난해한 딴 나라 문장가들의 그것보다는 대강이나마 교감하는 데 힘이 덜 부치기는 하다. 

   이대로 끝내기가 섭섭하니 연암이 쓴 유명한 한시漢詩 한 수와 청장관이 쓴 짧은 글을 옮긴다. 어렵지 않은 한자로 애잔함을 자아내는 한시, 짧은 글로도 이렇게 멋있을 수 있다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글재주, 탁월하달밖에. 그들처럼 언제쯤 문리를 깨우치려는지!



​燕岩憶先兄 돌아가신 형을 그리워하며

                                         박지원


​我兄顔髮曾誰似   

내 형님 얼굴과 수염은 누구와 닮았었나

每憶先君看我兄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날 땐 형님을 보았지

今日思兄何處見    

오늘도 형님이 생각나 어디 계신지 보고 싶어

自將巾袂映溪上    

의관 갖추고 시냇물 위에 비친 내 모습 쳐다보네



​예찬 4. 훼방으로부터의 도피                              

                              이덕무


재능이 명성을 부르지 않아도 명성은 반드시 재능을 따르고,

재앙은 재능에 달라붙지 않으나 재능은 반드시 재앙을 초래한다.

재앙을 스스로 길러냈겠는가? 사실은 훼방이 불러들이는 법.

좋은 거문고는 쉽게 상하고 잘 달리는 말이 먼저 들피가 지며,

기이한 책은 좀벌레가 망가뜨리고 아름다운 나무는 딱따구리가 쓰러뜨린다.

빛나는 재주를 자랑하자니 해코지를 재촉하고 귀를 막고 있자니 바보에 가깝다.

바짝 다가가지도 말고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말자. 그러면 복된 세계가 따로 열리겠지.

자연이 준 제 바탕을 지켜서 무고한 시기를 멀리 떠나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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