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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04. 2024

모름지기 인간다우려면

   마시모 보투라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명 요리사다. 보투라가 고향 모데나에서 운영 중인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는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최고 평점인 별 셋을 획득했고,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50(World’s 50 Best Restaurants) 1위(2016·2018년)와 2위(2015·2017년)에 꾸준히 오르며 ‘장기 집권’하다가 2019년 명예의 전당 격인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에 헌정됐다.

   2015년 밀라노, 세계 엑스포가 열리는 다섯 달 동안 한시적 이벤트로 보투라는 무료 급식소 <레페토리오(Refettorio)>를 열었다. 이탈리아어로 ‘다이닝 홀’이라는 뜻인 레페토리오는 라틴어 ‘레피세레reficere’에서 유래했다. 레페토리오는 ‘다시 만들다re-make’, ‘저장하다restore’라는 뜻도 있다.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것, 사용하지 않은 재료로 새로운 식경험을 재창조하는 것 모두 공통적으로 ‘버려진 것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가치’를 이야기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료, 맛과 품질에는 이상이 없지만 모양이 좋지 않아 팔리지 않는 식재료를 모아 밀라노에서 손꼽히는 셰프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주방을 맡아 근사한 3코스 정찬을 만들어 노숙자와 외국인 난민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접했다. 보투라의 <레페토리오>는 “음식쓰레기·지구온난화·기아·소외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참신한 해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푸드 포 솔Food for Soul> 재단을 설립했고, 런던·파리·리우데자네이루·샌프란시스코 등 세계 각국 빈곤·소외계층 지역에 <레페토리오>를 계속해서 세우고 있다.  ​

   보투라는 말한다. 

   “누구든 하루에 한 시간쯤은 아름다운 식당에서 아름다운 음식을 먹으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식의 번드르르한 겉치레이기보다는 차라리 정서적 만족의 추구라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정성이 담뿍 담긴 밥상머리에서 해낙낙하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정경이리라. 


   유럽 최초로 카페가 탄생한 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다. 1720년 12월 19일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지금도 성업 중인 카페 <플로리안>이 그 곳이다. 유럽 최초의 카페가 말해주듯 이탈리아의 커피 전통은 유구하고 이탈리아인들의 커피 사랑은 대단하다. 나폴리의 '카페 소스페소Caffè​ Sospeso'는 그러한 배경에서 생겨났다.

   '카페 소스페소'란 카페를 방문한 손님이 가난해서 커피를 사 마실 돈이 없는 다른 익명의 손님을 위해서 커피 한 잔의 값을 더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소스페소sospeso는 '미정', ‘연기되다’,  ‘미루다’ 등의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이다. 커피가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탈리아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커피를 나누는 활동을 하는데 이것을 '카페 소스페소'라고 말한다. ​  

   누가 마실지는 모른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누가 제공하는지 모른다. 바리스타가 기록해 두었다가 부랑인이나 노숙인이 오면 기부한 만큼 커피를 내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카페 소스페소>에서는 이를 '공동체의 연대'라고 말했다.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나폴리에서는 커피가 기호품을 넘어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매개체인 셈이다.

   받는 사람은 누가 커피를 남겼는지 모르고 남기는 사람은 누가 받을지 모른다는 점이 연대와 협력의 진정한 매력이지 싶다. 


​   음식이 매개가 된 연대감은 공교롭게도 이탈리아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MBC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하는 알베르토 몬디나 한국 여행을 초대받은 이탈리아 친구들을 통해 이탈리아노 기질을 간접적으로 엿볼 뿐이지만, 의외로 잔정이 참 많은 부류라고 느껴진다. 미식의 나라답게 음식으로 자선을 베풀 때 상대를 배려하는 품격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보투라는 레페토리오가 한 끼 끼니만 때우는 곳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노숙인이든 난민이든 누구나 맛좋은 요리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투라는 "20분도 안 돼서 접시를 비우고 도망치듯 식당을 떠나던 손님들이 이제는 요리 맛을 두고 불평을 한다"면서 "손님들이 불평을 시작했을 때 우리가 비로소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기사에서)

   레페토리오에서 레스토랑급 요리가 에피타이저·메인·디저트 3코스로 순차적으로 서빙되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 보투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레페토리오가 자선 활동이 아닌 문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지식을, 지식은 자각을 가져온다. 자각할 때 우리는 사회적 책임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조선일보 기사에서)


​   음식을 그저 생리적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시혜자나 수혜자나 미물 딱 그 수준일 뿐이다. 아름다운 음식을 먹으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모름지기 인간답다.


​○ 참고

<노숙자·난민 위해 '천상의 식탁' 차리는 미쉐린 3스타 요리사>, 김성윤, 조선일보, 2023.11.27

<난민과 노숙인 위한 레스토랑, 이탈리아 대표 셰프가 만든 작은 기적>, 심진용, 경향신문, 2017.05.23

<카페 소스페소>, 박종성, 경향신문, 2022.08.24.

<소스페소! 같이 먹고 삽시다>, 정대건, 한겨레, 202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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