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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06. 2024

땅속에 묻힌 진실

   1894년 9월 프랑스 육군 정보부는 파리 주재 독일 무관 집에서 프랑스군 내부에 비밀 정보를 독일 쪽에 흘리는 자가 있음을 보여주는 메모를 입수했다. 육군 참모본부는 필적 등을 근거로 참모본부의 유대인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체포했다. 드레퓌스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외딴섬에 유배되었다. 2년 뒤인 1896년 새 정보부장 피카르 중령은 진범이 헝가리 태생의 에스테라지 소령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권위 실추를 두려워한 군 지도부는 그 사실을 얼버무리며 오히려 피카르를 좌천시키고 형식적인 재판 절차를 거쳐 에스테라지를 무죄 석방해 버렸다. 그 이틀 뒤 프랑스 대문호 에밀 졸라는 일간지 <로로르(여명)> 1면 머리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고서 '에밀 졸라가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었다.

   이 글은 가히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대중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프랑스 사회는 본격적으로 드레퓌스파(재심파)와 반드레퓌스파(재심반대파)로 나뉘어 내전 수준에 준할 정도로 격렬하게 투쟁하였다. 시위, 폭동, 결투, 테러, 빈번한 폭력사태와 유혈충돌이 벌어졌고, 가족 간에도 이 문제로 인하여 심하게 다투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정치적인 쟁점으로 비화되었고 국제사회도 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다소간에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으나 1906년에 재심을 통해 무고함이 입증되며 사건이 종결되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푸른나무, 1999년)를 쓴 유시민은 "어떤 학자들은 드레퓌스사건이 20세기를 열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관과 철학이 충돌한 데서 빚어진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나는 19세기 막바지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은 낡은 세계관이요, 다른 하나는 20세기에 문명사회를 이끈 철학이다."라고 평했다.

   드레퓌스 사건과 전개 양상은 다르지만 꽃다운 젊은 해병이 억울하게 죽은 그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특검법이 통과된 것은 겨우 서막이다. 해병의 죽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본질이 무엇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는 야당 대표의 말은 그래서 정곡을 찌른다.

   에밀 졸라가 쓴 <나는 고발한다>가 100년도 훨씬 지난 요즘도 명문으로 추앙받는 까닭은 그것이 박해를 각오해서라도 비열한 음모를 까발려 진실에 다가서려는 사자후여서이다.      ​​​​


​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 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에서야 ‘사건’이 진정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오늘에서야 각자의 입장이 확실해졌기 때문입니다. 한쪽에는 햇빛이 비치기를 원치 않는 범죄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햇빛이 비칠 때까지 목숨마저도 바칠 정의의 수호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머지 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막 가장 멀리까지 울려 퍼질 재앙 중의 재앙을 준비했다는 것을.(<​​나는 고발한다>에서)


   땅속에 묻힌 진실이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해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 이 얼마나 호쾌한 호언장담인가! 아니다. 진실은 결국 규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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