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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08. 2024

쓰레기, 기레기

   쓰레기란 ‘쓸어버리는 것들’이라는 뜻이다. 쓸모없어진 물건을 버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옛날에는 그런 물건이 거의 없었다. 기근을 가까이 두고 살던 시절에, 음식물을 버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가축에게 먹였다. 낡아 못 쓰게 된 가구로는 다른 소품을 만들거나 정 못 쓰게 되면 땔감으로 썼다. 옷이 해지면 기워서 입었고, 기운 곳이 보기 흉할 정도로 많아지면 잘라내어 아이 옷을 만들었다. 아이 옷조차 닳으면 걸레로 썼고, 걸레로도 쓰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거지들에게 ‘발싸개’감으로 주었다. ‘거지발싸개’라는 말이 생긴 연유다. 깨진 그릇도 성벽 가까이에 쌓아 두어 유사시를 대비한 무기로 삼았다. 그러니 쓸어버리는 것은 먼지와 낙엽, 재 정도였는데, 그나마 농촌에서는 분뇨와 섞어 퇴비로 만들었다.

   산업혁명 이전의 거의 모든 쓰레기는 늦어도 1년 안에 자연으로 환원되었다. 쓰레기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난 지구를 덮기 시작한 것은 석탄이 나무와 숯을 대신하고, 잘 썩지 않는 물질이 발명되며, 사용가치가 남은 것들이 버려지면서부터였다. 지난 150년간, 한반도의 인구는 네 배쯤 늘었으나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은 천 배 이상 늘었다.

   자연으로 환원되지 않는 쓰레기와 함께 살아온 탓인지, 요즘에는 인성人性으로 환원되지 않는 유독有毒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계속 늘어나는 듯하다.(전우용)


​   한겨레신문 기자인 고명섭이 쓴 『담론의 발견』(한길사, 2006)은 신문 지면과 출판 잡지에 그가 쓴 서평 기사를 엮은 책이다. 여러 책 중에 피에르 아술린이 지은 『지식인의 죄와 벌』(이기언 옮김, 두레, 2005)을 소개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피에르 아술린의 책은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청산'에 관한 역사적 평가서인데 나치 협력자들 중에서도 지식인들의 부역행위를 훨씬 더 가혹하게 단죄한 이유, 즉 왜 지식인들이 더 호되게 처벌받았는지, 그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단다. 여기서 지식인이란 특히 언론인과 문필가를 말한다.

   똑같이 부역했음에도 왜 돈으로 부역한 자들보다 말과 글로 부역한 자들이 더 큰 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작가인 베르코르와 지성인의 모범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을 통해 단호하게 전달하는 대목은 우리 현실과 겹쳐져 공감이 극대화된다. 

   "기업가와 작가를 비교하는 것은 카인과 악마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카인의 죄는 아벨에 그친다. 그러나 악마의 위험은 무한하다."(베르코르)

   "나는 히틀러의 선전자들을 엄벌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말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 독가스실만큼이나 살인적인 말들이 있다."(시몬 드 보부아르)

   '기레기'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허위 사실과 과장되게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마저 추락시키는 사람과 그 사회적 현상을 지칭한다.(위키백과) 저질, 왜곡, 추악한 말들을 거리낌없이 쏟아내며 대상만 달라졌지 굴종과 부역을 서슴지 않는 기레기는 경멸을 넘어 단죄의 대상이다. 인성이 환원되지 않아 마음이 유독해진 쓰레기는 재활용하기가 쉽지 않아 생활 폐기물로 소각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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