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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10. 2024

사부 스타일리스트

   글쟁이로 먹고 살 자신은 없지만 꿈은 꿀 수 있잖아? 같은 꿈을 계속 꾸다 보니 예지몽이지 말란 법이 없어서 깎새는 꿈을 이루게 길라잡이가 되어 줄 능력자를 찾으려고 오늘도 우물에 가 숭늉을 찾는 심정으로다가 글무덤을 마구 뒤진다. 뻔히 놀이인 줄 알면서도 진짜 보물인 양 찾는 데 혈안이 된 아이마냥.

   찾았으면 써먹어야 한다. 써먹는다는 건 내 것으로 소화시킨다는 소리겠다. 그러자니 읽고 또 읽고, 베끼고 또 베끼는 수밖에 없다. 남의 글을 읽고 베끼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수법이 제 글에도 드리워지는 법이다. 이럴 때 쓰는 아포리즘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다.

   닮고 싶은 글쟁이들이 몇몇 있지만 굳이 열거하진 않겠다. 차라리 그 글쟁이가 남긴 글투를 여기다 옮겨 깎새 취향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살피는 게 더 흥미롭지 싶다. 그 말인즉슨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소리.

   작년 5월 향년 91세로 작고한 고故 최일남 선생이 쓴 오래된 산문집이 무료한 깎새 일상에 모처럼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새삼스레 글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동하게 들쑤시는 동인으로 단단히 한몫하는 중이다. 평생 무뎌지지 않았던 비판 정신, 해학과 풍자가 깃든 토속적이면서 개성적인 글투는 트레이드 마크였고 그걸 더 부각시키는 게 풍부하게 구사하는 토착어다. 매력적인 스타일리스트의 본보기로서 평생 닮고 싶은 글쓰기 사부이시다.

   오늘은 고故 최일남 선생 글투의 일면을 소개할까 한다. 다음은 누구일지 기대되지 않는가?


   그가 채소 장사이든 생선 장사이든 상관없다. 내내 호객하느라 칼칼해진 목을 적시기 위해 잠깐 들른 까닭에 그는 좌석에 앉는 법이 없다. 간이 주방 앞에 딱 버티고 서면 주모는 아무 말 없이 빈 맥주컵을 내민 다음 선반 위 막소주병을 들어 콸콸콸 쏟아 붓는다. 잔이 가득 차기를 기다리던 그는 역시 군말 없이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단숨에 비우기는 힘들었던지 반쯤 마신 잔을 벽에 붙은 판자때기 위에 슬며시 놓고 잠깐 숨을 돌린다. 그 사이 주모가 '싸비스'로 내준 깍두기나 고기 부스러기를 한 점 집는가 하자 이내 나머지 술을 입안에 탁 털어 넣는다. 전대에서 몇 닢의 은전을 꺼내 역시 탁 소리 나게 판자때기 위에 얹힌다.

   세상에 저렇게 술을 맛있게 마시다니! 이 세상에서 제일 술을 맛있게 드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구려 싶어 부럽게 탄복한다. 서부극의 총잡이들이 버번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입안에 던지듯 마시는 것과도 분위기가 판이하다. 그들의 술잔은 항상 밑바닥에만 조금 고일 뿐 찰랑찰랑 채우는 일이 드문 까닭이다. 객담 하나 덧붙이건대 게리 쿠퍼의 술 마시는 솜씨는 너무 점잖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속사권총의 맹수답지 않게 느리다. 커크  더글라스가 가장 멋있다. 절도 있게 잔을 꺾는 척하다가 어느새 비우고 씩 웃는다. 보조개가 더욱 돋보인다. 

   그야 어떻든 주모와 그는 그 동안 말 한 마디를 주고받지 않는다. 으레 그러기로 약조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각자 자기 할 일만 부지런히 서둘 따름이다. 한데 그들의 침묵은 곧 깨지고 만다. '아저씨'가 그냥 나가지 않고 재빨리 주모의 엉덩이를 톡 치고 내뺀 것이다. 그제서야 주모는 홱 돌아서서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저런 오살할 놈의 화상 좀 보게. 즈 예편네 궁둥이는 저당잡혔나. 왜 남의 궁둥이는 건드리고 지랄이댜?"

   가게 안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다발을 이루며 또르르 구른다. (최일남, 『정직한 사람에게 꽃다발은 없어도』, 동아출판사, 1993, 1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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