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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17. 2024

마갈궁의 운명

   강진에서의 유배가 10년째로 접어들 무렵인 1810년 9월, 맏아들 정학연은 마침내 능행에 나선 임금의 행차를 막고 격쟁擊錚하여 아비의 방면을 청했다. 이에 유배를 풀어 고향집으로 방축하라는 왕명이 내렸다. 하지만, 홍명주洪命周와 이기경李基慶의 극렬한 반대로 해배는 무산되고 말았다. 이후로도 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보다 못한 아들이 1816년 4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님, 한 번만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셔서 석방을 빌어보시지요.” 다산의 답장은 이랬다. “세상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시비是非와 이해利害가 그것이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롭게 되는 것이 가장 좋고, 옳은 일을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이 그 다음이다. 그른 일을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이 세 번째고, 그른 일을 하다가 해를 보는 것은 네 번째다. 첫 번째는 드물고, 두 번째는 싫어서, 세 번째를 하려다 네 번째가 되고 마는 것이 세상의 일이다. 너는 내게 그들에게 항복하고 애걸하라고 하는구나. 이는 세 번째를 구하려다 네 번째가 되라는 말과 같다. 내가 어찌 그런 짓을 하리. 이는 그들이 쳐 놓은 덫에 내 발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냐? 나도 너희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죽고 사는 문제에 견주면 가고 안 가고는 아무 것도 아니지. 하찮은 일로 아양 떨며 동정을 애걸할 수는 없지 않느냐?”

   다산은 아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18년 간의 유배를 견디면서 살려 달라는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다. 부끄러운 것이 없고 잘못한 일이 없는데 제가 먼저 굽히는 것은 마갈궁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결단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정민 교수에 의하면 마갈궁(磨蝎宮, 염소자리) 운명을 지닌 인물의 행동 특성은 다음과 같다. 


   ① 압도적 재능과 총기를 타고난 천재들로 특히 문장에 뛰어나다.

   ② 수틀린 꼴을 두고 못 보아, 이로 인해 말 못할 시련을 겪더라도 무릎 꿇거나 타협하려 들지 않는다.

   ③ 쉽게 갈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골라 고통을 자초하고, 옳지 않은 길은 죽어도 안 간다.

   ④ 설령 일확천금의 기회가 생겨도 거들떠보지 않고, 어떤 권력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한다. 그러니 그 운수가 순탄할 리 없다.


   그런 인물들로 조선 시대 허균, 박지원, 정약용을 중국 당나라 한유와 송나라 소동파를 꼽았다.

   기존 방식과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자아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던 노마드 연암과 원칙을 지키고 실현하려는 방법으로써 실용을 택한 실용적 원칙주의자 다산을 내면화할 수만 있다면 세상 그 어떤 값진 것과도 바꾸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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