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May 16. 2024

모두가 신뢰할 중재자가 있을까

   게임 이론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상황은 다양하다. 일차선 도로를 두 차가 정면으로 마주보고 높은 속도로 다가온다. 먼저 자동차 핸들을 꺾어 차선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내기에서 지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자동차 경주가 있다.(제임스 딘이 출연한 영화 <이유없는 반항>(1955)에도 비슷한 경주가 등장한다.) ‘치킨 게임’으로 불리는 이 황당한 게임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 출발하자마자 차의 방향을 고정하고 핸들을 떼어 차창 밖으로 버리는 거다. 상대가 볼 수 있게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따라서 핸들을 떼어 차창 밖에 버리면, 이제 100퍼센트 정면 충돌 사고가 날 것이 확실해도 아무도 피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이기려 섣불리 핸들을 떼어 버려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없앴다가는, 아무도 살아서 집에 가지 못한다. 자기가 죽거나 중상을 당할 것이 뻔한데, 그래도 지지는 않았으니 기쁘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이런 황당한 게임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어쩌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놓여도 해결책이 있다. 게임에서 아무도 지지 않으면서도 둘 모두 안전히 돌아갈 수 있는 묘책이 있다. 바로, 누군가가 “하나, 둘, 셋”을 세면 정확히 동시에 핸들을 꺾으라고 둘을 설득하는 거다. 둘 다 자존심을 세우고, 사고도 나지 않는 해결 방안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둘 모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람만 둘을 설득할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한겨레)

​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중재자란 과연 존재할까? 잘 없으니까 '치킨 게임'이란 파국으로 치닫지. 만약 대립하는 양측을 모두 설득할 해결자가 있다고 치면 그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과연 무엇일까? 도저한 인품에 기초한 인간적 접근일까 아니면 이성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접근일까? 

   요즘 시국이라면 극적인 교섭을 이룰 이상적인, 하지만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중재자를 바라기보다는 차라리 가차없이 밀어붙이는 공세에 의한 파국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첩경일지도.

   암만 둘러봐도 현실에선 신적인 중재자는 없다.

작가의 이전글 부재는 그리움을 더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