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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18. 2024

이럴 거면 자동이체는 왜?

   개업할 때 들였으니까 2년이 조금 지났다. 정수기를 임대하면서 분기마다 정수기 점검하는 조건으로 매달 내는 수수료는 1만8천 원이고 매달 10일 자동이체하기로 약정했다. 하지만 지난 2년여를 돌이켜보건대 제 날짜에 돈 빠져 나간 횟수는 손으로 꼽기조차 구차할 지경이다. 이체일 하루이틀 넘겨 빠져 나가기 다반사이고 다음 이체일인 15일, 어떨 땐 20일이 다 되도록 기다리기 일쑤였다. 이체일이 주말, 주일이거나 공휴일이면 다음 영업일 빠져나간다는 것쯤은 안다. 그것까지 감안한다면 지체하는 날은 더 길어진다.  

   정수기 업체에다가 허다하게 항의했지만 반응은 안이했다. 업체 대표라는 여자는 경리 직원한테 주의를 주는데도 빼먹는 경우가 잦다는 변명을 앵무새마냥 되뇌였을 뿐이었다. 의구심만 커졌다. 정수기업체 수입원 비중 중에 정수기 판매 수익 외에 정수기를 빌려준 뒤 정기적으로 점검해 주는 조건으로 받는 수수료 비중이 제법 클 텐데 그걸 제때 걷지 않는데 어쩜 그리도 무심할까?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지 않나? 경리도 그렇다. 자기가 왜 월급을 받는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도저히 용서받기 힘든 직무 유기자는 해고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저질러서는 안 되는 과오를 반복하는 직원을 방치하는 대표라는 자는 직원보다 더 이상하지만.

   업체 대표 입장에서 보면 유난 떠는 고객 만나 곤혹스러울 만도 할 게다. 제 날짜에 제발 요금 빼내 가라고 닦달하는 인간이 드물기는 할 테니. 허나 돈을 대하는 태도가 고객마다 천차만별이라 해도 업체 대표는 맡은 소임에만 충실하면 된다.

   돈 때문에 곡절을 많이 겪었던 깎새는 금액이 크든 작든 돈이 엮인 사안은 제때 털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매달 돌아오는 정기 지불금이 제 날짜에 청산되는지 안 되는지를 특히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본다. 만약 정상적이지 않은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 자동이체일이 무의미해진 정수기 요금이야 만성적인 돌발 상황이겠지만 아무튼 이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돈이 빠져나갈 때까지 좌불안석이다. 비록 제 과실이 아님에도 그런 상황이 빚어지게 된 빌미를 제공한 성싶은 찝찝함으로 부쩌지를 못하는 게다. 아마도 내야 할 돈을 제때 내지 못한 탓에 걸려온 독촉 전화로 온종일 시달리던 뒤웅박 팔자 시절이 악몽처럼 떠올라서일 게다.

   금요일이었던 지난 10일 정수기 수수료가 또 빠져 나가지 않자 13일 월요일 항의 전화를 했는데 갑자기 깎새가 격앙되었다. 왜 이런 전화를 자꾸 걸어야 하는가, 이럴 거면 자동이체는 왜 거냐고 퍼부어 댔다. 뻔한 대답에 통화가 길어지다가는 없던 화병까지 생길 게 두려워 그길로 끊어 버렸다. 부처님 오신 날인 15일이 공휴일이라 16일까지 기다렸지만 자동이체는 여전히 감감했다. 임대 조건이 계약 후 3년 유지인데 2년 하고도 2달 지났다. 위약금 계산해보고 다른 업체로 갈아탈지 목하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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