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시리스트

by 김대일

머리를 깎다 말고 한 손님이 원장한테 돈 잘 버는 아이템에 관해 장광설을 늘어 놓았다. 그가 떠벌리는 일확천금의 비결은 따박따박 월급 받듯 일정하게 벌어들이는 방법이기보다는 요행수에 기댄 위험성이 수반된, 건방지게 말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가까웠다. 머리 흔들려서 커트를 못하겠다는 원장 타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떼부자가 되는 첩경을 쉴 새 없이 떠드는 그를 지켜보면서 중요한 뭔가를 빠뜨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하마터면 땅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가리키듯 오지랖을 떨 뻔했다.

- 잘 버는 만큼 잘 쓰는 수완도 좀 가르쳐 줘봐요.

인지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자기가 돈을 얼마를 벌면 무엇을 할 것인지 '위시리스트'(소원 목록)을 작성해두는 게 좋다. 목적이 없으면 돈이 생기고 건물주가 되어도 갈수록 삶이 허망해진다. 돈은 소원을 풀기 위한 도구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 밝혔다.(한겨레신문 기사, 2021.08.04)

2020년 상반기 로또 1등 평균 당첨금이 21억(세전)이라고 한다.(연합뉴스 기사, 2021.02.12.) 세금으로 4.6억(세율 33%)을 제한 16.4억을 나라면 어떻게 잘 쓸지 쓸데없이 진지하게 위시리스트를 상상해봤다.

집이 좁다고 난리인 마누라와 딸들을 위해 지금 사는 집을 판 돈에 3억 정도를 보태 깔끔한 33평형 아파트를 구입하겠다. 새집에 이주한 첫날 식구들과 먹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10억을 입금시킨 아내 명의 통장을 식탁 위에 턱하니 꺼내 놓을 테다. 나머지 돈으로 내가 설령 망해 먹어도 식구들이 밥은 굶지 않을 정도의 거액이다.

집 사는 데 3억, 마누라 통장으로 10억을 입금시키고 남은 3.4억 중 4천만 원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쉐보레 익스플로러 밴 중고를 사다가 내부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충당하겠다. 3억으로는 경남 통영의 목 좋은 곳에다 남성전문 커트 가게를 차리는 데 쓰겠다. 그리고 가게를 함께 꾸릴 실력 좋고 인성도 좋은 믿을맨 직원 둘을 파격적인 보수를 조건으로 채용하겠다. 나까지 세 명이서 일하는 가게가 손님으로 북적거리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좀 미흡해도 주5일 근무제를 절대 포기하진 않을 작정이다. 종업원들의 근무 여건 개선이 우선이긴 한데 속내는 나 좋자고 하는 꼼수다.

나이 들면 통영에 살고 싶다. 굳이 가게를 통영에다 차리는 이유는 통영을 지독시리 짝사랑하기도 하려니와 그 통영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남해와 서해 연안 일대와 섬들을 두루 유람하고 싶은 욕구가 지나치기 때문이다. 익스플로러 밴을 산 이유이기도 하다. 혹 지겨우면 훌쩍 내륙 곳곳으로 진출할 수도 있고. 그렇게 여생을 홀가분하게 즐기고 싶다. 종업원들에게 섭섭하지 않을 급여를 주고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까닭도 내가 가게를 자주 비울 걸 대비해서이다. 일도 하고 돈도 벌지만 1년에 휴가가 절반인 내 일상을 위해 3억이 썩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모자라지도 않다고 본다.

어떤가. 이만하면 살뜰하게 로또 당첨금을 쓴 편 아닌가.

작가의 이전글시 읽는 일요일(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