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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22. 2024

라곰

   스웨덴 단어인 '라곰lagom'은 '적당한, 알맞은' 따위로 번역된다. 8~11세기 뿔 모양 잔에다 술을 돌려 마시던 바이킹 풍습에서 그 유래를 찾곤 한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이 마셔도 적게 마셔도 곤란하니 눈치껏, 적당히 마시되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자기 만족. 이타심과 이기심의 경계선 상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한 심리적 균형 맞추기로써 스웨덴인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태를 이해하는 열쇳말이면서 스웨덴의 병리 현상을 해석하는 단초라고 한다. 즉,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짧고 간결한 말투, 논쟁적 소재에 대한 대화를 기피하는 절제와 겸양, 배려를 중시하는 라곰 정신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북유럽식 삶의 철학을 나타내는 반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자칫 무심함이나 냉정함으로 비춰지기 십상인 ‘사람 간의 거리 두기’가 지독한 외로움의 근본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그래서 스웨덴은 행복한가>, 한겨레, 2017.10.09 참조) 

   고故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해외 여행을 떠났을 때다. 스웨덴을 돌고 그 감상을 피력해야 하는데 스웨덴에서 받은 인상이 의외로 착잡해서 어려웠다고 밝혔다. 


​   한 가지 예를 들면 아내와의 다툼에 대하여 동료에게 이야기를 꺼내면 이야기를 채 잇기도 전에 정중하게 그 문제는 전문 상담자와 상담하라고 권유하면서 이야기를 잘라 버립니다. 물론 전문 상담자는 그의 동료보다 훨씬 더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삭막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훌륭한 시설을 갖춘 노인 복지관의 할머니는 생면부지의 여행자인 나를 붙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년의 생활은 무척 삭막해 보였습니다. 물론 복지관에 상담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내 훌륭한 시설이란 무엇인가 반문해 보았습니다. 편리하게 설치되어 있는 첨단 시설들이 오히려 비정한 모습으로 내게 비쳐 오는 것이었습니다.(신영복 유고,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돌베개, 175~176쪽)​


   선생이 스웨덴에서 느낀 삭막함의 정체는 아픔을 함께 공유하려 하지 않으려는 비정한 거리두기, 라곰의 어두운 이면은 아니었을까. 스웨덴 성인의 40%가 지독한 외로움을 호소하고 우울증 치료제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며, 인구의 절반이 1인 가구로 살아가고 4명 중 1명이 홀로 죽어간다. 자기 감정을 드러낼 수도, 가족과 친구의 어깨를 빌릴 수도 없는 처지에서 그나마 기댈 곳은 시스템일는지 모른다. 라곰 문화가 종종 스웨덴인의 ‘복지 의존도’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유란다. 칼럼 제목처럼 그래서 스웨덴은 행복할까. 

   그렇다고 2021년 기준 무연고 사망자 수 3,795명이 4년 전인 2017년(2,008명)보다 89% 증가한 우리 현실도 딱히 내세울 건 없다. 배려라는 미명 하에 사람 사이에 넘지 못할 경계선을 그어 철저하게 거리를 둔 채 무관심과 수수방관을 일삼는 인간관계가 정상적일 리 없다.

   대학 신입생이던 1990년대 초반, 신입생 환영회 자리엔 부으면 소주 두 병이 너끈히 담기는 냉면 사발이 어김없이 돌았다. 좀 과하다 싶음 세수대야에까지 술을 담아 신입생들한테 돌렸다 바이킹처럼. 술을 입에도 못 대는 동기가 다음 순서면 미리 사발째 대신 비워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객기였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하는 게 술을 못 마시는 동기를 위한 배려인 줄 알았다. 

   '어떤 대상의 자리나 구실을 바꾸어서 새로 맡거나 그렇게 새로 맡은 대상'을 뜻하는 '대신代身'은 타인을 위한 선한 오지랖이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결기 같은 거다. 그때를 벨 에포크로 여기는 꼰대는 그래서 라곰이란 단어가 자꾸 목구멍에 턱턱 걸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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