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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24. 2024

마릴린 먼로를 추앙하다

   이미지와 실체 사이에 괴리가 가장 큰 인물은 단연 마릴린 먼로다.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금발 미녀의 치마가 펄럭이는 장면을 보면서 바람이 더 세게 불어줬으면 하는 서운함, 나만 들었나.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뇌쇄적인 입술, 뜬 듯 만 듯 게슴츠레하게 상대를 응시하는 먼로에게 야릇한 춘정이 일지 않는다면 그게 목석이지. 그렇다고 매력적이고 섹시한 외모를 가졌지만 머리가 비어있는, 멍청한 금발 여성을 의미하는 빔보Bimbo 캐릭터로만 먼로를 소비하는 건 대단한 편견이 아닐 수 없다.  

   명리학자이자 음악평론가인 강헌은 한 일간지 칼럼에서 마릴린 먼로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   프랑스 지성인 에드가 모랭은 그의 책 <스타>를 통해 20세기 대중문화사에 등장한 주요 개념인 ‘글래머’의 탄생이 ‘굿-배드-걸’(good-bad-girl)’에 닿아 있다고 말했다. ‘굿-배드-걸’은 처음엔 경박한 옷차림과 대담하면서도 암시로 가득 찬 태도로 무장한 섹스어필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기존 ‘요부’의 본질과 동일하지만 그 사람을 알아갈수록 그녀가 순수한 영혼과 천성적인 착함, 그리고 약자에 대한 헌신적인 마음씨를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요부’나 ‘팜므 파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바로 이 ‘굿-배드-걸’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이 명식의 주인공인 마릴린 먼로이다.​

   (...)

   실제의 먼로는 인품과 지적 매력 그리고 유머 감각까지 지닌 놀라운 여성이다. 그녀의 놀라움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애티튜드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스타가 되고 난 뒤에도 흑인 아이들과 한 컵의 아이스크림을 스스럼없이 나누어 먹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아직 흑인 민권운동이 본격화하기 전인 195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양부모에게 성추행당한 과거를 고백하며 여성운동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정치적으로 오로지 순응을 강요받았던 매카시즘 시대에 인종과 성별에 대한 차별을 수용하지 않은 매우 보기 드문 여배우였다. 결국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 존 에프 케네디라는 당시 진보의 상징적인 인물과 은밀한 연인관계를 맺게 된 것도 그저 권력자와 여배우 간의 그렇고 그런 관계가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치명적 변수' 케네디 없었다면…마릴린 먼로는 어떤 삶 살았을까>, 한겨레, 2018.10.12에서)


​   바로 이어 강헌은 뛰어난 배우로서 먼로를 높이 평가했다. 


​   그녀는 글래머 코미디 스타로 그의 커리어 대부분을 할애했다. 하지만 먼로는 그저 대중성과 인기만을 쫓는 여배우가 아니었다. <벤허>가 작품상을 탄 196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뮤지컬 코미디 <뜨거운 것이 좋아>의 주인공을 맡았던 그녀에게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명배우 잭 레먼은 먼로의 상대역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연기의 신이라고 불렀던 로렌스 올리비에도 화려한 외면에 가린 먼로의 지적 재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위 칼럼)


​   유지나 영화평론가 역시 '지성파 배우'로서 마릴린 먼로를 극찬했다.


​   자아도취와 자기혐오라는 극단적인 인지부조화 속에서 결국 죽음으로 자신을 내몰 정도로 순수하게 자신과 직면한 사람, 연기를 통해 자기혁신을 꾀한 자아실현의 의지를 갖춘 철학적인 시인 같은 지성파 배우, 고독을 친구 삼아 철저히 자기준비를 했던 프로, 대중이 만들어준 스타의 공익적 기능을 간파한 동시에 장식품이 되길 거부한 지성(칼 롤리슨 저서 『세상을 유혹하는 여자 마릴린 먼로』 서문에서 인용)


​   '멍청한 섹시스타'가 아닌 천생 배우로 먼로가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1954년 2월 강원도 인제 미군부대를 찾아 위문공연을 한 것을 기념한답시고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인적 드문 소양강가에 생뚱맞게 마릴린 먼로 동상을 세워 빈축을 산 적이 있었다. 경향신문 칼럼 <여적>은 그 일을 계기로 마릴린 먼로를 소환했는데 뜻밖에 '독서광 마릴린 먼로'에 주목했다.


​   먼로의 연기코치였던 나타샤 라이테스는 “먼로는 다른 이의 지적 토대 위에 좋은 것을 취해 자기 것으로 흡수하는 정신적인 비치코머(해변에서 물건을 줍는 사람)였다”고 회고했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와 마르셀 프루스트, 토머스 울프 등의 작품은 물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읽었다. 먼로의 독서 가운데 백미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다. 가장 위대한 작품이지만 도저히 읽어줄 수가 없는, 그래서 20세기 가장 어려운 문학의 대명사로 꼽힌 <율리시스>를 다름아닌 먼로가 섭렵했다는 것이다. 특히 단 8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는 <율리시스>의 마지막 50쪽을 큰 소리로 달달 외웠다. 행바꾸기도,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통제되지 않고 흐르는 작품속 주인공의 부인(몰리 블룸)의 독백을 외워나갔다. 먼로는 “책의 사운드가 너무 좋다. 의미를 알려면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사실 먼로의 율리시스 읽기 방식은 아주 적절했다는 평이 있다. 동양의 고전이 그렇듯 유럽도 10세기 무렵 글쓰기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행바꾸기나 마침표, 쉼표, 단락 등 가독성을 높이는 요소가 전혀 없었다. 때문에 수도원이나 관청 등은 큰소리로 문장을 읽는 소리가 가득찼다. 소리를 내서 읽어야 길고 어려운 문장의 바다에서 내용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단 8개로 구성된 <율리시스>의 마지막 50쪽이야말로 입으로 읽고, 눈으로 보고, 다시 귀로 듣는 세 단계를, 그것도 몇 번 씩 거쳐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을 것이다. 먼로의 읽기가 옳은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먼로는 왜 그 어렵다는 <율리시스>를 읽어나갔을까.​

   먼로는 천생 배우였다. ‘배우’로서 철저한 심리분석을 위해 <율리시스>를 연기의 교과서로 삼은 것이다. ‘멍청한 섹시스타’로만 여길 수 없는 반전매력이다.(이기환 논설위원, <'독서광' 메릴린 먼로의 '섹시 동상'>, 2018.01.03 에서)​


​   <여적>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   먼로에 대해 잘 모르면 침묵이 금이다.

    

   하여 제대로 알기로 했다. 그리고 추앙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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