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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27. 2024

올해도 친구는 거미

   미관상 영 아니다 싶으면 무거운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려도 싹 없애 버리지만 점방 후미진 데 알뜰살뜰 지은 건 모른 척 다 놔둔다. 눈에 띄는 즉시 다 죽여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불구대천 물것들하고는 그 처지가 달라도 완전히 다른 거미가 겁 없이 앞을 기어가면 제 갈 길 가게 길까지 터 준다. 

   진작에 커밍아웃은 했는데 깎새는 거미에 홀딱 반한 작자다. 동장군이 퇴장하자 훈훈한 기운이 스멀거리면서부터 거미집이 슬슬 목격되니 마음부터 설렜다. 정처없이 떠돌다 돌아온 불알친구와 상봉을 기대하듯 올해 첫 거미를 가슴 벅차게 영접하다. 네 덕분에 일상이 무료하진 않겠구나. 고맙고 또 고마운 녀석. 

   거미란 녀석을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주례라는 부산의 한 동네 남성 커트점에서 알바를 하던 3년 전쯤부터였으리라. 그 점방 서서 소변 보는 남자 화장실에 거미가 살았다. 커트점 원장이 여자인지라 남자 화장실에 신경이 덜 간 틈을 타 녀석은 유리가 깨진 창틀에 제법 널찍한 거미집을 방사형으로 짓고 살았다. 그 녀석 고대광실에서 좀 떨어진 귀퉁이에는 녀석보다 덩치가 한참 밀리는 다른 거미 한 마리가 역시 거미집을 짓고 살았지만 작고 성글었다. 꼭 새끼한테 집 짓는 법을 가르치는 아비인 양 둘은 공생했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거미집부터 찾았다. '밤새 안녕?' 안부 물으려 한달음에 달려가도 어떨 땐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안 내밀던 녀석이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엔 거미집 한 가운데에 떠억하니 군림해 있었다. 공사가 다망한 줄은 알겠는데 너무 비싸게 구는 성싶어 슬그머니 서운했다. 하지만 당시 품값 받는 나나 점방 화장실에서 곁방살림하듯 거미집 짓고 사는 녀석이나 남의 집에 얹혀 사는 처지는 어슷비슷한지라 차라리 동지애가 더 애틋할 지경이었다. 오줌 누다 말고 이런 내 마음 너는 알기나 하냐며 중얼거리니 거미란 녀석 잠자코 있다. 그 묵묵함까지 마음에 들어 뭐라도 건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루는 손님 머리를 감기고 주변을 정리하다 모기 한 마리가 앵앵거려 손으로 툭 쳤는데 나자빠졌다. 꿈틀거리는 걸 손바닥으로 압살시키려다 집어서 얼른 화장실로 향했다. 물것을 거미줄에 갖다 대니 그대로 달라붙었다. 거미집이 출렁 요동을 치자 녀석이 놀란 듯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이내 먹잇감인 줄 알아보고 웬 떡인가 싶게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거미줄로 물레 돌리듯 칭칭 감았다. 제 덩치만한 걸 득템했으니 그날은 폭식하는 날이었으리라. 뿌듯함이란 감정이 이런 것이로구나!


​   아침에 거미를 보면 근심과 걱정이 생긴다? 동요 속에 나오는 이 말은 거미 자체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으며 실 잣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다.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침 일찍부터 실을 잣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상식의 오류사전 3』, 발터 크라머 외, 박정미 옮김, 경당)​


   『서경잡기』란 옛날 책에 '아침 거미는 기쁨, 저녁 거미는 도둑'이라고 했다는데 거미를 대하는 태도가 동서양이 정반대다. 고로 둘 다 뻥이란 말씀. 아침에 보건 저녁에 보건 자주 봐서 기분이 좋아지면 그만이다. 서로 친구 먹으면 나타나는 감정이기도 해. 거미 녀석은 알는지 모르겠다만. 

   오늘도 쌍심지를 켜고 물것들을 찾아 헤맨다. 기절시켜 거미집에 갖다 놓게. 잔인한가? 아니다. 그저 거미를 좋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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