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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28. 2024

라떼파파는 무력하다

   3년 전 개업 때부터 주욱 단골인 라떼파파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이 점방에 들어섰다. 치과 기공사로 일하던 중 임신이 되자 커리어 단절에 절망하다 산후 우울증 기미까지 보인 아이엄마를 대신해 양육을 전담했던 라떼파파는 공인중개사로 경제 활동을 재개한 이후로는 혼자서 머리 깎는 횟수가 늘었다.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따로 오곤 했는데 이날은 아빠와 아들이 모처럼 함께 행차하신 게다.

   아빠가 먼저 의자에 앉아 이발을 했다. 엄마 우울증이 영향을 끼쳤는지 속단은 금물이나 또래에 비해 사교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선 적응을 잘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느긋한 성품이던 라떼파파가 어울리지 않는 침울한 목소리로 썩 반갑지 않은 저간의 사정을 들려주자 덩달아 침울해진 깎새.

   - 아이 엄마가 학교에 수태 불려갔어요.

   학교생활을 힘겨워하던 아이가 쉬는 시간 교실을 나가 배회하다 입실하지 않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교내면 몰라도 학교 밖으로 나가 버리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서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도 등교해 교실 밖에서 감시하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모양이었는데 나가도 너무 나간 학교 측 대응이었다.

   - 교실 밖 복도에서 내내 감시하는 꼴이 자기네들도 보기 민망했는지 매일 나와라 했다가 이틀에 한 번 나와라 했다가 부르면 나와라 했다가 요즘은 잠잠합디다.

   심리상담도 받아보고 병원도 다녀봤지만 ADHL(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일종이라는 답변만 돌아오고 딱히 치유책을 들어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고 했다.

   아이 차례가 되어 머리를 깎으면서 아이를 유심히 살피던 깎새가 흠칫 놀란다. 창백해 보이는 아이 얼굴에서 어떠한 표정도 발견해낼 수 없었던 까닭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빠와 머리 깎으러 들를 적엔 곧잘 대화도 나누고 장난도 치던 아이가 말수가 없어지고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 기미는 초등학교를 막 입학한 뒤 엄마와 점방을 찾으면서 목격하긴 했다.

   자기 자식인 양 안타까워하는 깎새였다. 여섯 살 무렵 깎새 점방엘 드나든 이래 구김살 없이 잘 자라 준 아이였다 최소한 깎새가 보기에는. 모르긴 몰라도 라떼파파가 아이 양육을 전담하면서 부족한 사회성을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을 게 틀림없다. 라떼파파가 초등학교 입학을 대비해 유치원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을 시나브로 늘리는 강수를 감행한 까닭은 아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자 아빠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아빠는 공인중개사로 파트타임을 점점 늘렸을 테고.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지경이니 3년 가까이 부자를 지켜본 깎새로선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 병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달리 해 줄 말이 궁해서 기껏 꺼낸 위로라는 게 펜싱하다 관두고 일반고로 전학을 간 막내딸 얘기가 고작이었다. 적응에 포커스를 맞췄다고는 하나 핀트가 맞지 않으니 말을 해 놓고도 달갑지가 않았다. 당연히 라떼파파도 감흥이 일 리 없다. 슈퍼맨 같던 라떼파파 뒷모습이 무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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