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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May 29. 2024

씨름 도른자

   한 지역을 배회하면서 불특정 다수와 만나 노래 1절을 틀리지 않고 완창하면 금반지를 주는 TV 프로를 보다가 초등학교 씨름부원들과 왕년에 여자 씨름을 석권했고 여전히 씨름을 즐기는 족발집 여사장 인터뷰에 눈에 갔다. 씨름에 미친 자들한테 씨름이 왜 좋냐고 묻는 게 가당찮긴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우문현답이었다. 게다가 그 현답이라는 게 짜고 치는 고스톱인 양 똑같았으니 누려본 자들만이 느끼는 호사이리라.

   샅바를 잡는 순간 이는 희열.

   샅바를 꽉 쥐자마자 드는 전광석화와도 같이 순식간에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수완이 몸 속 아드레날린, 도파민을 사정없이 자극해 흥분이 최고조에 달하다가 수없이 자빠뜨리고 나동그라지는 통에 으적으적 씹히는 씨름판 모래 맛에서 승리의 쾌감에 비례해 지체없이 패배에 승복하는 미덕을 체득하는 것. 씨름의 묘미를 진즉에 알아챈 이들에게 영광 있으라!

   다른 운동 놔두고 유독 씨름에 집착했던 계기는 분명치 않다. 짐작컨대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1980년대 중반이 이만기를 필두로 한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대유행기였던 건 맞지만 꼭 그에 편승해 씨름을 즐겼던 건 아닌 성싶다. 야구는 장비 값이 비싸 못 해 먹겠고 중장거리 달리기를 곧잘 즐겼는데 같은 반에 육상부 선수 2명이 늘상 1~2등을 해 처먹어 배알이 꼴린 나머지 다른 걸 찾다 눈에 뜨인 게 씨름이었지 아마.

   두 사람이 맞붙어 자웅을 겨루는 스포츠, 흔히 격투기라고 일컫는 운동은 일단 깔끔해 마음에 들었다. 기술을 걸어 상대를 자빠뜨리거나 되치기를 당해 내가 넘어지거나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쌈박하게 이뤄지는 시합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게 승복이다. 결과가 분명한데 야료를 부리는 건 스스로를 추하게 만들 뿐이다.

   진득하지 못한 성미도 한몫 거들었을 거이다. 샅바 쥐고 길어야 5분 안에, 어떨 땐 '시작!'과 동시에 승부가 결정나는 속전속결의 미학이 씨름의 매력이라는 걸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때부터 알아챘을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전광석화처럼 상대를 누일 기술과 체력을 길러보겠다고 방과 후 귀가할 생각은 않고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네모진 씨름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었다. 그때 씨름판 모래깨나 같이 씹었던 스파링 파트너를 몇 해 전 우연히 본가 동네 근처에서 조우했었는데 골프 강사한다면서 명함을 내밀더라. 골프가 자세를 중히 여기는 스포츠라고 하면 어릴 적 씨름으로 단련한 장딴지 힘만으로도 중심 흔들릴 일은 없을 테니 강사 노릇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란 믿지 못할 상상을 해봤다. 

   선수도 아니면서 씨름에 푹 빠져 살던 중학생이 뺑뺑이로 들어간 고등학교엔 공교롭게도 당시 유명짜한 씨름부가 있었다. 졸업하면 프로 팀에 들어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꿈인 진짜 씨름 선수들이 득시글거리는. 당시 체육 특기생들이 대체로 그렇듯 교실 맨 뒤에서 수업시간에 잠만 자다가 훈련시간 때만 비지땀을 흘리는 그들과 대학 진학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책상물림들하고는 가는 길이 아주 달라 서로를 도외시했지만 씨름 도른자는 연습에 몰두하는 그들을 먼 발치에서나마 동경하곤 했다. 어떤 식으로든 안면 터서 들배지기 기술을 걸었는데도 왜 번쩍 들리지 않는지, 호미걸이 기술을 효과적으로 걸자면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따위를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씨름부 감독이 일반 학생의 연습장 출입에 난색을 표했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등장하듯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당시 교정 분위기 때문인지 씨름부한테 말 거는 자체가 큰 모험일 수밖에 없어서 훈련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는 걸로 끝났지만 씨름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다른 고등학교 체육대회에 씨름 종목이 있었는지 안 물어봐서 모르겠지만 씨름 도른자가 다녔던 학교는 반 대항 씨름 단체전을 체육대회 종목에 꼭 끼워 넣었었다. 2학년 때만 석패했을 뿐 1, 3학년 때는 우승을 했고 당연히 우승의 주역이었다. 특히 3학년 예선 시합으로 기억하는데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키듯 백두급 깍짓동을 상대로 태백급이던 도른자가 먼저 한 판을 내줬음에도 내리 두 판을 따내 이긴 건 쾌거 중의 쾌거였다. 대입 시험에 목을 매는 인문계 고등학교 체육 행사라는 게 시간 때우기 식으로 대충대충 하고 말아도 뭐라고 할 사람 아무도 없는데도 당시 담임 선생은 교실 맨 뒤에서 잠자던 씨름부의 승부욕을 깨워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씨름만은 우승해야 한다며 선발된 인원들의 기량 향상을 위한 기술 전수를 명하신 덕에 진짜 선수들한테 개인 교습을 받는 호강을 다 누리긴 했다.

   소싯적 씨름 덕에 믿을 건 엉덩이에서 허벅지, 장딴지로 내려오는 탱탱 라인이었다. 이만기, 강호동하고 비교할 바는 못 되나 운동 좀 했겠다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던 탄탄한 하체는 자존심 그 자체였다. 하지만 헬스장 러닝머신에 들이부은 시간이 얼만데 그 노고가 허탈하게도 샤워한 뒤 엉덩이를 닦다가 낙심하고야 말았다. 탄력은커녕 돼지 비계를 갖다 붙인 양 축 늘어진 게 바람 빠진 풍선 두 쪽과 다를 바 없었으니. 허벅지랑 장딴지는 또 어떻구. 화가 난 듯 불끈불끈하던 근육은 다 어디 가고 없이 밋밋하게 빠진 게 꼭 중국집 나무젓가락 두 쪽 같아 민망하기까지 했다. 헬스장 평생 이용권이라도 끊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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