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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n 03. 2024

메타인지

   모친 면회 시간은 3시. 10분 일찍 도착해 1층 경비실에 신분을 밝히자 4층 병실로 전화를 거는 경비원. 곧 이어 엘리베이터로 안내한 뒤 4층을 눌러줬다(요양병원 엘리베이터는 보안카드를 들이대지 않으면 계기판 버튼이 눌러지지 않아 관계자 도움 없이는 운행이 불가하다. 고로 멋대로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고 병실로 올라가지 않았다). 병실로 들어서니 간호사인지 간호조무사가 가로막고서는 환자가 재활훈련 중이라 부재 중이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면회가 이뤄질 테니 도로 내려가라며 면박을 줬다. 경비원이 통화한 4층 누군가가 깎새 앞에서 건조하게 대응하는 이가 아님이 확실한 건 시간 관념이 그토록 철저하게 밝히는 이가 정시 면회 시간 전에 올려 보내라고 할 리 없기 때문이겠다. 올라가래서 올라왔는데 가악중에 불청객 취급을 받은 깎새는 억울해서 너무 분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목요일 새벽, 플라스틱류를 한참 버리고 있는데 그런 깎새를 본 아파트 경비원이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차더니 "투명한 거, 색깔 있는 거, 패트류 따로 버리라고 뻔히 나눠놨더니 마구 버리는 건 뭔 심본지, 쯧쯧." 퉁을 놓았다. 목요일 재활용 쓰레기를 맡아서 버리는 깍새는 이골이 나도 벌써 났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기가 막히면서 너무 분했다.

   "그럼, 어떻게 버려야 하는데요?"

   "보면 모르요?"

   저녁 퇴근하자마자 헬스장 가서 땀 빼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문 닫는 시간을 과감하게 6시로 당긴 지 어느덧 석 달이 지났다. 점방 불을 6시에 끈다 해도 청소, 빨래하고 그날 장부까지 정리하다 보면 7시 다 되어 퇴근하기 다반사다. 하여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염색은 마감 시간을 아예 5시로 더 당겼다. 매달 4~5백 명 정도 드나드는 손님들한테 일일이 공지하는 게 성가셔서 5시 넘어서 이발에 염색까지 주문하는 손님이 들어오면 양해 구하기 바쁘다. 헌데 뻔히 깎새 사정을 알면서도 마감 30분 전에 들어와서는 염색해 달라는 단골이 곱게 보일 리 없고 마스크 속에서 구겨지는 면상을 어쩌지도 못한다. 문제는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볼멘소리다.  

   "6시 마감이라 안 됩니다!"

   우수수 손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쉽사리 고쳐지질 않는다. 가뜩이나 성마른 성미가 갈수록 더 옹졸하고 빡빡해지니 큰일이다. 도대체 왜 그러지?

   세계사 팟캐스트 진행자가 중국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곽자흥이란 토호 아래 들어가 홍건적 생활을 하며 능력을 꽃 피우던 24살 무렵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주원장은 머리가 좋았고 싸움도 아주 잘했다. 전투력도 뛰어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이라고 할까, 자기 마음을 컨트롤하며 굉장히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가졌다. 야망이 크다 보니까 자기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안 게다. 여러분, 만약 사소한 일에 화가 나시나요? 말도 안 되는 것에 짜증을 내고 분노를 표출하시나요? 그때는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내 꿈이 작구나. 내 야망이 작구나. 아니면 늙어서 쪼그라들었구나. 그렇다면 자신을 자책 비슷하게 채찍질하십시오. 그래서 그 종지를 키워. 사소한 일 있잖아요. 지나가다가 툭 부딪혔는데 화가 난다거나 아니면 대중교통 가면 말도 안 되는 폐를 끼치는 온갖 빌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에 직면하면 의도적으로 저런 것 정도는 내가 넘어가자, 내가 왜 화가 날까 하는 메타인지를 해야 됩니다.


​   그리 말하는 진행자조차 예전 호방했던 기질은 온데간데없이 요즘 짜증만 늘어 쪼그라든 게 분명하다고 시인했다. 나이가 들어 쪼그라든 종지를 메타인지를 키우면 정녕 다시 키울 수 있긴 한 걸까. 메타인지란 과연 무엇인가. 

   궁금한 건 못 참아 곧장 검색해 보니 메타인지란 스스로 자기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이란다. 갈등 관계에서 발휘될 경우 반성, 사과, 화해 등이 있겠지만 애당초 전략적 사고와 합쳐 이상적으로 발휘된다면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제어해 서로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는 자기 성찰 능력이다. 즉, 몹시 언짢고 못마땅하다고 곧이곧대로 성을 내지 않고 이러는 게 과연 맞는지를 살피는 자기 검증 절차인 셈이다.

   조선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걸쳐 세 번 영의정에 오른 오리 이원익은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광해군 시절 정치적 파행의 책임을 물어 반정 다음날 89세 나이로 참형을 당한 정인홍과 완전 대비된다. 

   정인홍은 광해군 대에 있었던 임해군과 영창대군의 죽음, 그리고 인목대비의 경운궁 유폐에 모두 관련되었다. 광해군 재위 기간에 그와 이원익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위 세 사람의 처벌 문제를 두고, 두 사람은 대립했다. 이원익은 너그럽게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인홍은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인목대비 문제로 이원익이 강원도 홍천에 귀양 가 있을 때, 정인홍은 그 처벌이 너무 가벼우니 벌을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라는 책에 나오는 이원익의 정인홍에 대한 언급은 이원익이 가졌던 인간 이해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정인홍이 죽은 후 이원익은 가까운 후배 재상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도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소인(小人)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소인’이란 말은 세상 물정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고 바른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뜻했다. 그러자 그 재상은 “제가 비록 옛 성현들만은 못해도 어찌 소인까지야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원익은 “정인홍은 젊어서부터 원칙을 지키는 사람으로 유명했소. 그 사람이 폐모론에 관여하리라 누가 예상했겠소?”라고 반문했다. ‘폐모론’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조선시대에 어떤 이유로도 허용될 수 없는 주장이었다. 이원익이 이어서 말했다. “나이 늙고 뜻이 쇠해지고 친구들이 밖에서 권하고 자손이 안에서 충동질하여, 마침내 폐모를 청하는 상소를 올려서 90세 나이에 처형되었소. 나는 그 일 이후 나 자신을 더욱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지냅니다.”(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원 전임연구원, <역사와 현실-이원익 '메타인지'>, 경향신문, 2024.02.21 에서)


​   필자가 밝힌 이원익의 메타인지란 과연 무엇일까. 칼럼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역사의 시공간에서 주어는 자주 바뀌어도 술어는 별로 바뀌지 않는다. ‘폐모론’이 역사의 시공간에서 주어라면, “나이 늙고 뜻이 쇠해지고 친구들이 밖에서 권하고 자손이 안에서 충동질”하는 것은 술어에 해당한다. 주어는 그때그때 바뀌는 문제와 쟁점이고, 술어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처리 방식이다.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니 ‘폐모론’ 같은 것이 문제 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나이 늙고 뜻이 쇠해지고 친구들이 밖에서 권하고 자손이 안에서 충동질”하는 상황은 나타날 수 있다.

   이원익은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그가 남에게 너그러우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엄격히 절제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인간에 대한 메타인지가 뛰어났다. (위 칼럼)


​   4층 병실을 담당하는 관계자들을 못마땅해하면 모친한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꼭두새벽부터 재활용 쓰레기 분리해내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경비원들한테 짜증을 부리면 그들은 위축되어 임무를 소홀히 할지 모른다. 부드러운 거절로 마감 시간 임박해 들어온 손님을 돌려 보낸다면 뒤끝이 생길 리 없어 재방문 여지가 남는다. 하여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문구가 비수처럼 꽂히는 순간이다. 메타인지라.

   내친 김에 어떻게 하면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탐색했다. 그 중 인상적인 3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   1.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앎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논어』)'라고 공자는 말했다​. 또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무지보다는 가짜 지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버나드 쇼도 떠오른다. 이에 대해 '인간은 무지한 존재다. 따라서 인간이 뭘 잘 모른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뭘 잘 모르더라도 자신의 무지를 인지할 수 있을 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무지를 안다고 해서 자신의 무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을 채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인 김영민의 말은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2. 기록하기

   : 병원 면회 사건, 재활용 쓰레기 배출 사건, 손님 돌려보낸 사건을 자백한 건 부끄럽지만 고해성사나 다름없다. 종지를 키울 순 없어도 더 쪼그라들지 않게 하자면 부끄러운 과오를 줄기차게 드러내야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 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한 말,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뛰어야 한다"는 왜 기록을 해야 하는지 그 까닭을 에둘러표현한 게다. 쪼그라들지 않으려면 죽어라 기록해야 한다.

   3. 실패를 복기하기   

   : 역정이 나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말투를 버리기 위해서라도 병실 관계자, 경비원, 손님과 마주했던 상황을 복기하고 또 복기해야 한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자칫 만성으로 굳어질까 두려워 끊임없이 직면하는 게다.


   그냥 얻어지는 메타인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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