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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n 02. 2024

시 읽는 일요일(154)

​파장罷場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먹걸리들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   (신경림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시인이 쓴 『시인을 찾아서』는 읽었지만 정작 시인의 시를 찾아 읽은 적은 없다. 별세한 시인을 추모하는 글을 읽다가 <파장>이란 시에 눈이 갔다. <눈길>, <갈대> 같은 시도 좋지만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란 첫 소절에 속절없이 꽂혀 버렸다. 생활의 고달픔을 좀체 드러내지 않았던 시인한테서 탁월한 해학과 낙관이 어떻게 가능했겠냐고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선생은 되물었는데 정말 궁금하다. 시인은 과연 투사鬪士이면서 철인​哲人이었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421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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