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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n 11. 2024

라흐마니노프를 아세요?

   깎새 네이버 블로그 프로필 사진은 라흐마니노프 초상이다. 피아노협주곡 3번이 특히 해장에 그만이라 그걸 만든 능력자라면 추앙할 만하다 싶어 그의 사진을 걸어뒀지만 그가 누군지 모르는 이가 더 많을 혼자만의 애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주말 30대로 보이는 손님이 쭈뼛대며 들어왔다. 커트보를 치고 막 깎으려는데,

   "블로그 프사가 혹시 라흐마니노프 아닌가요?"

   깜짝 놀라는 깎새였지만 의뭉스럽게 되물었다.

   "라흐마니노프를 아세요?"

   "그 방면에 관심이 없으면 누군지 알 리 없겠지만 한때 몸담았던 입장에서 모를 수가 없지요."

   동네 남자 커트점을 물색하려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깎새 블로그까지 흘러들었던 모양이다. 게시글을 읽다 보니 그 동네 지형지물과 흡사한 데가 많아 혹시나 싶었단다. 프사가 라흐마니노프니 그걸 빌미로 진짜 글 쓰는 깎새인지 짐짓 물어보리라 다짐했다나.

   "한때 몸담았다 했는데 악기를 다뤘다는?"

   "학부 때 바이올린 전공이었지요. 지금은 관뒀지만."

   "아예 다른 일 하시나 봐요?"

   "관련이 전혀 없는 그냥 직장인입니다. 예술한답시고 깝죽대다간 배 곪기 십상이라 진즉에 손을 놓았지요."

   글 쓰는 깎새를 알아본 것보다 라흐마니노프를 알아본 사실이 더 신기하고 반가웠지만 이내 오금이 저린 깎새. 

   "손님 덕에 오늘 좋은 교훈 하나 얻었네요. 사람이 미워도 가급적이면 그 사람 욕은 글로 안 써야겠다는. 점방 찾은 손님에 관해서는 특히 더! 언제가 되었든 그 손님이 글을 안 본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라흐마니노프를 아세요?

   자기검열이 작동한다는 암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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