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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n 10. 2024

국수가 먹고 싶다

   비만의 원흉이 밀가루 음식이라면서 헬스장 출입하고부터 면 종류를 식단에서 아예 지워 버린 마누라. 하지만 마누라가 장모 생신 축하하러 충북 음성 처갓집에 간 틈을 노려 식탁을 독차지한 깎새는 지난 금요일 이래 저녁 식사로는 무조건 냉국수를 처먹었다. 기말고사 대비하느라 두 딸까지 독서실로 갔으니 거침없이 질주하는 깎새 먹성을 누가 제어할 텐가. 그러니 달리 무주공산일까. 예전엔 미역, 오이, 양파를 곁들인 냉국을 손수 만들어 육수로 삼아 국수를 말았지만 증거를 안 남기려고 가까운 슈퍼에서 멸치 육수를 사는 치밀함을 보였다. 삶은 면에다 찬 육수를 들이붓고 김가루를 고명 삼아 목구멍으로 마구 밀어넣는 깍새. 나름 주도면밀했다. 

   밀가루 음식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전까지 여름이란 계절로 들어섰다 하면 하루 한 끼 무조건 국수로 때우는 게 일상이었다. 맛있으면서 간편하게 배를 불리는 음식으로는 국수만 한 게 없어서. 게다가 면발이 한가득 담긴 그릇을 보고 있노라면 우선 들고 보는 포만감으로 먹지 않았는데도 온몸은 이미 한껏 벅차오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국수의 진면목은 먹고 나서다. 국물까지 말끔히 비우고도 한두 시간이면 배가 금세 꺼지고 마는 게 한여름밤의 꿈 같지만 입맛 다시며 다음을 기약하는 바는 먹는 맛, 사는 맛이 무엇인지 새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된다. 

   글재주만 좋다면 국수로 웅숭깊은 인생론을 펼치고 싶다만 역부족이니 다음 시로 대신할 수밖에. 자, 오늘 점심은 국수로 때우시라.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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