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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03. 2024

세상은 살고 볼 일

   꽤 오래 전 친구들과 들렀던 술집의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는 이쁜 손글씨로 '죽습니다'를 연발하는 글이 적혀 있는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꽤 인상적이어서 그길로 찍은 사진을 지우지 않고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죽습니다'가 각운처럼 구절 끄트머리에 배치되어 리듬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물론 가독성까지 증폭시키는 특징이 일품인데 죽는 방법이 참 가지가지여서 재밌고도(?) 놀랐다.

   오복 중에 하나가 고종명이라고 했다. 예전엔 제 명 대로 못 사는 인생이 하도 많아 오래 사는 행운을 기원했을 테지만 너무 오래 살아서 탈인 요즘에는 구닥다리 퇴물 신세를 못 면할 성싶다. 하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고달픔이 그 정도가 지나쳐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팔자라는 푸념이 넘치는 시대이기도 하니 인생은 예나 이제나 괴로움이 끝이 없는 고해가 맞다. 

   혹자는 그 고해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처넣는 것만이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유일책이라고 최면을 걸기도 하는데 그런 이에게 '죽습니다'란 표현은 지진 살갗에다 인두를 다시 들이대는 꼴이나 마찬가지겠으나, 의도적으로 불쾌한 자극을 줘서 부정적 행동을 치료하는 혐오치료처럼 묘하게 설득적인 면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알코올 중독 환자에게 구토제를 먹여 메스꺼움을 느끼게 한 직후 알코올 냄새가 나는 음료를 마시게 해 구토를 유발하듯이 말이다. 

   메모글엔 비루한 신세일지언정 자기를 모질게 몰아세우면서까지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행간에 도사리고 있다. 하여 마지막 문구가 작심한듯 가슴을 후벼 판다.

   휘갈겨 쓴 메모지가 이 세상 그 어떤 처세술보다 강렬하다. 세상은 우선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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