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Jul 02. 2024

위대한 위선

   <Before the rain>이 아니고 <San Francisco bay>였다면 그렇게까지 상념에 빠지진 않았을 게다. 장마비가 흩뿌리던 지난 일요일 저녁 썰렁한 광안대교를 지나갈 무렵, 라디오 DJ는 신청곡으로 동시에 들어온 리 오스카 연주곡 2곡 중 하필이면 <Before the rain>을 틀어줬다. 그것도 편집된 것 말고 비 내리는 소리가 근 30초 간 이어지는 오리지널 곡으로 말이다. 제 깐에는 마침 비 오는 일요일 분위기와 제법 포개지겠지 하는 심산에서 비롯되었겠지만 듣는 깎새로선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중에 듣는 <Before the rain>이라 운치가 날 법도 하지만 지나치면 이내 감상感傷에 젖고 만다. 그것도 아무는 데 무지하게 애를 먹었던 실연이란 생채기를 남긴 오래 전 사랑의 배신자들 얼굴이 느닷없이 떠오르면 달리 대책이란 게 있을 리 만무하다. 추억은 세월과 함께 서서히 잊혀 가다가 어느 날 문득 가슴 찌르는 아픔이 되어 되살아나는 것이라지만, 그들과 하등의 관련이 없는 리 오스카 하모니카는 썩 유쾌하지 않은 추억을 소환하는 기제로 작동해 비 오는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려 사람을 홀려 버린 셈이다.  

   대학교 때 사귀었던 경희, 서울에서 사회 생활 막 시작할 무렵 만났던 서울내기 현선, 얼굴은 선연히 떠오르는데 이름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묘령의 다른 여자까지 그들 모두는 서로 짠 듯이 공통점이 있다. 좋아할 때는 언제고 떠날 때는 그 흔한 이별 통고 한 마디 없이 당시 연락 수단이었던 삐삐는 불통이었고 핸드폰 번호까지 아예 바꿔 버리면서까지 홀연히 자취를 감춰 버리는 신공이 특기였던 여자들. 그리 모질게 연을 끊은 여자들이었으니 아마 다들 그들 입맛에 맞는 더 좋은 배우자 만나 떵떵거리면서 호의호식하고 있을 게다. 그런 그들과 여전히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덕에 본의 아니게 독한 회상에 젖는 이 청승을 감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Before the rain>이 던진 파문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만약 그들이 잠적하기 전 그들 나름대로 성의껏 보냈을 결별의 신호를 흐리마리하게나마 감지한 이쪽에서 먼저 선빵을 날렸다면 <Before the rain>은 어쩌면 승전곡으로 성격이 변했을 수도 있었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기왕에 이별 통고를 받았다면, 떠나가지 말라고 애원하지 않는 편이 재결합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이 '찌질하게' 보여서 헤어지자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처량하게 매달리면 얼마나 '더 찌질해' 보이겠습니까? 당신이 둔감하다고 여겨서 고민 끝에 헤어지자고 하는데, 그 고민을 헤아리지 못하고 매달리면, 얼마나 더 둔감해 보이겠습니까? 매달리지 마십시오. 헤어지자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래, 헤어져"라고 대답하고 두말도 하지 말고 돌아서 나오십시오. 그리고 절대 먼저 연락하지 마십시오. 어디 동굴 같은 데 들어가 마늘즙과 쑥즙을 먹으며 버티다 보면, 헤어지자던 여자친구가 다시 연락해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냉큼 돌아 나오기가 어디 쉬운가요? 눈물 콧물 타액 식은땀 등 얼굴의 각 구멍에서 액체란 액체는 다 흘러나올 지경일 겁니다. 이별 통고를 받자마자, 제발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고 싶을 겁니다. 바로 이때! 위선이 필요합니다. 안 그런 척하는 겁니다. 태연한 듯 "그래, 헤어져"라고 또박또박 말하고, 미사를 마치고 떠나는 신부처럼 의연히 돌아 나오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위대한 위선을 해낼 수 있을까요? 반복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라는 말을 녹음한 뒤, 매일 아침 들으며 "그래, 헤어져"라고 반응하는 연습을 반복하는 겁니다. 마치 종소리만 들으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될 때까지 반복합니다. 그리하여 이별 예식에 숙달되면, 헤어지자는 말만 들어도, 자동적으로 입에서는 "그래 , 헤어져"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몸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게 될 겁니다. 누가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면 자동으로 손을 맞잡게 되는 것처럼. "우리 이만 헤어져." "그래, 헤어져." 이어지는 문 닫는 소리, 쾅. 이러한 이별의 예식은 재결합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여자친구는 의아해하게 됩니다. 아, 내 상황 파악이 틀렸던 게 아닐까, 이 친구에게 내가 모르는 면이 있었구나 등등.

   코미디언 그라우초 마크스는 말한 적이 있죠. 나를 받아주는 클럽 따위에는 가입하고 싶지 않다고. 늘 자기를 받아주던 남자라서 소중한 줄 몰랐고, 그래서 선뜻 헤어지자고 말했으나, 막상 자기에게 매달리지 않는 모습을 보니,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스멀스멀 드는 겁니다. 그러다 뾰족한 대안이 생기지 않으면, 다시 연락이 올지도 모르는 거죠. 끝내 연락이 안 오면 어떡하냐고요? 그거야 제 알 바 아니죠. 적어도 안전 이별은 이루어진 것 아닌가요?(김영민,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사회평론, 130~132쪽)


   되돌아보건대 가장 큰 패착은 녹음기를 사지 않았다는 거다. 녹음기를 안 샀으니 반복 훈련을 할 수 없었고 훈련을 못 했으니 찌질하고 말았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들이 품었던 독기 반의반만이라도 위선적이었더라면 최소한 <Before the rain>을 들으면서 쓰잘데기없는 감상에 젖지는 않았을 테다. 

   비 오는 날엔 리 오스카 연주곡을 안 듣는 게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3f56qh5PmUA


작가의 이전글 부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